ᆢ
그러니
아프지만 아프지 않음이 함께 있으면서 아픈 것, 이러면 아픔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이 생깁니다. 전혀 부족하지 않음을 기반으로 한 부족함. 이러면 부족함을 채우려고 힘을 쓸 수 있잖아요. 이런 것입니다.
뭔가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이것이 바로 절대에 기반을 두고 상대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리가 생겨난 이후에 일어나는 이 모든 움직임이 양극성이고 양극성은 움직임과 활력과 생명력의 근간이 됩니다.
모든 생생한 생명력을 보세요.
다 아주 강력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움직임은 어딘가를 향해서 달려가는 거예요. 그런데 "어딘가"로 왜 움직이겠습니까? 거기에 도달하려는 힘 때문이죠.
인간에겐 끌림과 밀침이 있습니다. 어떤 기준이 있을 때 일어납니다. 그 기준을 자기라고 믿는 것과 그 기준은 마음의 현상이라고 여기는 것은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자기라고 믿으면 끌림과 밀침에 끌려다니면서 매트릭스 속 캐릭터로 살아가고, 자기라고 믿지 않고 마음의 현상으로 보면 끌림과 밀침이 때에 따라 만들어졌을 때 강한 움직임을 일으키고 사라지면 그냥 고요히 있고, 흘러가는 대로 갈 수가 있습니다.
이제 자신을 위해 살아갈 일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 자신이라는 게 마음의 한 현상이라는 게 분명해지니까요.
그런데 그 나 자신이라는 것을 다른 이를 위해서 쓰기 위해서 만들어낸 나 자신은 필요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에너지가 생겨나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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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解; https://chatgpt.com/share/6a20d39a-5638-8320-a807-119d5f52a814?ogimg=pl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