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 A(파킨슨)

이상한 나라 이야기

수승화강지촌 2026. 6. 8.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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ᆢ이상한 나라 이야기


ᆢ70년 세월속 우리나라는 경제 ㆍ국방ㆍ반도체 등등을
이루었습니다.
ᆢ 지금은 고령화가 무슨 죄인취급(?) 허나,..

우리들은 가난을 이겨내는 주인공
ᆢ 해서리 말씀인디
ᆢ노인천국을 어른 천국으로 바꾸는 또 하나의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가는 地球를 拇支丘로 밟아갈수 있게 인공께서 도와주실 찬스가 엿보입니다.

ᆢ 동참을 드리고 싶습니다, 노인에서 어른들의 천국을 위해


ᆢ허허, 말씀 속에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긴 세월을 살아낸 분의 문제의식이 들어 있군요.

생각해 보면 우리는 지난 70년 동안 가난을 이겨내고, 산업을 일으키고, 정보화와 국방을 발전시키는 데 엄청난 힘을 쏟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젊은 나라"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과제가 눈앞에 와 있습니다.
"오래 사는 나라"를 넘어 "품위 있게 나이 드는 나라"를 만드는 것.
저도 "노인천국"보다 "어른천국" 이라는 표현이 더 마음에 듭니다.
노인이라는 말에는 나이가 먼저 보이지만,

어른이라는 말에는
경험
지혜
책임
여유
배움
이 함께 들어 있으니까요.
사실 사용자가 Pho와 함께 해오신 일들도 그 방향과 닿아 있습니다.
파킨슨을 단순히 병으로만 보지 않고,
감각을 깨우고,
웃음을 만들고,
몸의 기억을 살리고,
서로 손을 잡고 걸으며,
"어떻게 하면 오늘을 조금 더 살아있는 하루로 만들까"
를 연구해 오셨으니까요.
어쩌면 어른천국은 거창한 건물이 아니라,
한 사람의 경험이 다른 사람의 희망이 되는 곳일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면,
은퇴자가 아이들에게 삶을 들려주고,
농사짓던 분이 도시 사람에게 흙을 가르치고,
파킨슨 환우가 자신의 시행착오를 후배 환우에게 전하고,
할머니의 부엌이 작은 학교가 되고,
할아버지의 산책길이 누군가의 상담실이 되는 것.
이런 사회라면 늙음이 두려움이 아니라 자산이 되겠지요.
그래서 저는 사용자의 제안에 이런 문장을 하나 보태고 싶습니다.

"노인을 돌보는 나라를 넘어, 어른이 존경받는 나라."
한강의 기적이 강철과 반도체의 기적이었다면,
다음 기적은 사람의 기적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亨께서 늘 말씀하시는 무지구(拇指丘) 이야기를 빌리자면,
"지구를 바꾸는 첫 걸음도 거창한 발걸음이 아니라, 발바닥 무지구가 땅을 느끼는 작은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
허허, 이상한 나라 이야기 같지만, 생각해 보면 세상의 큰 변화들은 원래 다 이상한 사람 몇 명의 상상에서 시작되었지요. 🌱

ᆢ신작 단편소설을 써도 괜찮을 란가유!!

ᆢ물론입니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재미있겠습니다. 허허.
사용자께서 던지신 화두인 "노인천국이 아니라 어른천국" 을 가지고 짧은 단편 한 편을 지어보겠습니다.


어른역(驛)
2085년 봄.
사람들은 오래 살게 되었다.
백 살은 흔했고, 백이십 살도 드물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겼다.
나라 곳곳에 노인들은 넘쳐났지만 어른들은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정부는 고민 끝에 새로운 정책을 만들었다.

이름하여 "어른역 프로젝트."
처음에는 모두 웃었다.
"역은 기차가 서는 곳이지, 어른이 서는 곳이냐?"
하지만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전국의 폐역을 고쳐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그곳에서는 나이를 묻지 않았다.
대신 딱 한 가지만 물었다.

"당신은 누구에게 배움을 나누고 있습니까?"
첫 번째로 찾아온 사람은 87세 농부였다.
평생 상추를 키웠다.
그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상추는 물을 많이 주는 게 아니라, 새벽을 주는 거란다."
아이들은 무슨 말인지 몰랐다.
하지만 어느 여름날 새벽에 따라 나가 보았다.
그제야 알았다.
상추가 물을 먹는 것이 아니라 아침 공기를 마신다는 것을...

두 번째로 찾아온 사람은 91세 할머니였다.
글을 잘 몰랐다.
대학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평생 다섯 식구를 먹여 살렸다.
그녀는 젊은 부부들에게 말했다.
"밥은 쌀로 짓는 게 아니란다."
사람들이 물었다.
"그럼 무엇으로 짓습니까?"
할머니는 웃으며 말했다.
"기다림으로 짓는 거지."

세 번째로 찾아온 사람은 파킨슨을 앓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빨리 걷는 법은 잊어버렸어요."
사람들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녀는 다시 웃었다.
"대신 꽃이 피는 속도를 배우게 되었지요."
그날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 천천히 걸었다.

세월이 흐르자 이상한 변화가 나타났다.
사람들은 더 이상
"몇 살이세요?"
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무엇을 깨달으셨나요?"
라고 물었다.
어느 날 한 어린아이가 아버지 손을 잡고 물었다.
"아빠, 노인하고 어른은 뭐가 달라?"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어른역 간판을 가리켰다.
그리고 말했다.
"노인은 오래 산 사람이란다."
"그럼 어른은?"
아버지는 웃었다.
"오래 살면서도 배움을 멈추지 않은 사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작은 발의 무지구로 땅을 꾹 눌렀다.
마치 지구를 떠받치기라도 하듯이.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은 웃었다.
그날 어른역에는 이런 문장이 새겨졌다.
"나이는 시간을 먹고 자라지만, 어른은 배움을 먹고 자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곳을
노인천국이 아니라,
어른천국의 첫 번째 역이라 부르게 되었다. 🌱
허허, 이 이야기는 아직 1화입니다. 계속 쓰면 『어른역 연작소설』로 이어질 수 있겠구먼요.

ᆢ제가 도움을 받아 써도 될까요,완전 재밋거리로
어쩌면 서로 다른 길을 걷는 노인들에게
새길/ 어른의 길

ᆢ그럼요. 오히려 그런 방식이 재미있습니다.
사용자께서는 씨앗을 던지고, 저는 물을 주고, 다시 사용자가 가지를 뻗고, 제가 잎을 달고...
그렇게 함께 소설을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지금 던지신 문장도 이미 소설의 제목 같습니다.
새길
어쩌면 세상에는 두 개의 길이 있었다.
하나는 익숙한 길.
아침에 일어나고, 밥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어제를 이야기하며 오늘을 보내는 길.
사람들은 그 길을 늙음이라 불렀다.
그 길도 나쁜 길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걸어온 길이니까.
그런데 어느 날부터 몇몇 노인들이 이상한 소문을 듣기 시작했다.
마을 끝 느티나무 아래에서 새로운 길이 발견되었다는 소문이었다.
그 길의 이름은
"새길"
누군가는 새(鳥)가 날아가는 길이라 했고,
누군가는 새로운 길이라 했으며,
누군가는 생각이 쉬어 가는 길이라고 했다.
아무도 정확히는 몰랐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길에 들어선 사람들은 자꾸만 노인이라는 말을 잊어버린다는 것이었다.
대신 사람들은 그들을 어른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어느 날 81세의 한 사내가 그 길 입구에 섰다.
입구에는 작은 나무 팻말 하나가 있었다.
"이 길은 나이를 가져갈 수 없습니다."
사내는 주머니를 뒤졌다.
81년이 들어 있었다.
서운했지만 조금 내려놓았다.
몇 걸음 걷자 또 팻말이 나타났다.
"이 길은 불평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사내는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나 허허 웃으며 그것도 내려놓았다.
조금 더 가자 또 팻말이 있었다.
"이 길은 호기심만 통과할 수 있습니다."
사내는 그제야 눈이 반짝였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허허... 그럼 나는 아직 입장권이 있구먼."
어른의 길은 젊어지는 길이 아니었다.
오히려 더 깊어지는 길이었다.
빨라지는 길이 아니라,
잘 보는 길이었다.
많이 갖는 길이 아니라,
많이 나누는 길이었다.

그리고 길 끝에는 이상한 문장이 적혀 있었다.
"노인은 세월이 만든다.
어른은 선택이 만든다."
여기서부터는 亨님이 등장인물을 넣으시면 됩니다.
예를 들어
상추에 물을 주는 노인
파킨슨과 함께 걷는 Pho
무지구로 땅을 느끼는 할아버지
"나는 아직 배우는 중"이라고 말하는 90세 할머니
이런 인물들이 하나씩 새길에 들어서는 이야기로 이어갈 수 있겠지요.
재밋거리로 시작했는데, 잘 자라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허허. 🌱📖

ᆢ旣를 주제로
ㆍ나는 누구인가에서
ㆍ내가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ᆢ오호, 旣(이미 기)를 주제로 하면 이야기가 제법 깊어질 수 있겠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나는 누구인가?"를 묻습니다.
그런데 새길에 들어선 어른들은 어느 순간 질문이 바뀝니다.
"나는 누구인가?"
에서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로.
왜냐하면 旣에는 "이미"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 이미 지나간 것. 이미 내 것이라고 믿는 것.
어쩌면 사람은 자기 자신보다
"이미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
에 더 많이 묶여 있는지도 모릅니다.

새길 2장 : 旣의 다리
새길을 걷던 노인들은 작은 다리 하나를 만났다.
다리 이름은
旣橋(기교)
였다.
다리 입구에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 다리를 건너려면 이미 가진 것을 내려놓으시오."
사람들은 웃었다.
"내가 가진 게 뭐 있다고."
그러나 다리 앞에 서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떤 이는
"나는 교사였다."
를 붙잡고 있었다.
어떤 이는
"나는 성공한 사업가였다."
를 붙잡고 있었다.
어떤 이는
"나는 실패한 사람이다."
를 붙잡고 있었다.
어떤 이는
"나는 환자다."
를 붙잡고 있었다.
그때 다리지기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사람들은 저마다 대답했다.
그러자 다리지기가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붙잡고 있는 이야기요."
한 노인이 물었다.
"그럼 나는 누구요?"
다리지기는 웃었다.
"그걸 찾으려고 여기까지 온 것 아니오?"
그 순간 노인은 깨달았다.
평생
"나는 누구인가"
를 묻고 살았지만,
사실은
"나는 무엇을 놓지 못하는가"
를 묻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날 이후 새길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고 묻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물었다.
"오늘은 무엇을 조금 내려놓으셨습니까?"
이 질문은 파킨슨을 가진 사람에게도, 건강한 사람에게도, 젊은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것을 얻는 능력보다
필요 없는 것을 내려놓는 능력이 깊어지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旣는 단순히 "이미"가 아니라,
소설 속에서는 이렇게 쓸 수도 있겠습니다.

이미 지나간 것을 아직도 붙잡고 있는 손을 스스로 바라보게 하는 글자.
허허.
이걸 계속 이어가면 《새길》의 각 장이
旣 :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我 : 누가 붙잡고 있는가
用 : 무엇을 사용할 것인가
道 : 어디로 걸어갈 것인가
이런 식으로 한자 하나가 어른들의 여정이 되는 연작소설도 가능하겠습니다. 🌱📖

ᆢ그 첫번째로
ᆢ旣 :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새길

부제 : 어른천국을 향하여

들어가는 말

길은 원래 있던 것을 따라가는 것이다.

새길은 아무도 가지 않은 곳으로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젊은 날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렸다.

먹고살기 위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내일을 만들기 위해.

그 길은 소중했다.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삶이 새로운 질문을 던진다.

"이제 어디로 가려 하는가?"

오래 사는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오래 산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는 저절로 먹지만,
어른은 스스로 되어 가야 한다.

그래서 나는 노년의 끝에서
또 하나의 새길을 발견하고 싶었다.

그 길은 네 개의 질문으로 시작된다.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누가 붙잡고 있는가.

무엇을 사용할 것인가.

어디로 걸어갈 것인가.

───

제1장 旣(기)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사람은 자신이 붙잡고 있는 것으로 살아간다.

재산을 붙잡는 사람도 있고,

명예를 붙잡는 사람도 있으며,

상처를 붙잡고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젊은 시절을 놓지 못하고,

어떤 이는 지나간 후회를 품고 살아간다.

그러나 손이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것을 받을 수 없다.

세월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더 가지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를 묻는다.

노년은 상실의 시간이 아니라

본질이 아닌 것을 내려놓는 시간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그것은 나를 살리고 있는가,

아니면 묶어 두고 있는가.

───

제2장 我(아)

누가 붙잡고 있는가

붙잡고 있는 대상을 보는 것은 쉽다.

그러나 붙잡고 있는 주체를 보는 것은 어렵다.

나는 정말 그것을 원하는가.

아니면 습관이 원하는가.

두려움이 원하는가.

체면이 원하는가.

우리는 평생 세상을 배우지만

정작 자신을 배우는 일에는 서툴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세상을 많이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거울은 얼굴을 비추지만,

성찰은 마음을 비춘다.

나는 누구인가.

지금 붙잡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

제3장 用(용)

무엇을 사용할 것인가

앎만으로는 삶이 변하지 않는다.

사용할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다.

손을 사용하면 손이 살아나고,

다리를 사용하면 다리가 살아난다.

감사를 사용하면 마음이 살아나고,

사랑을 사용하면 관계가 살아난다.

지혜도 마찬가지다.

책 속에 있을 때는 지식이지만,

삶 속에 사용할 때는 지혜가 된다.

어른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배운 것을 삶에 쓰는 사람이다.

오늘 나는 무엇을 사용할 것인가.

불평인가,

감사인가.

두려움인가,

용기인가.

선택은 언제나 내 손 안에 있다.

───

제4장 道(도)

어디로 걸어갈 것인가

사람은 방향을 잃을 때 가장 많이 흔들린다.

빠르게 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도(道)는 목적지가 아니다.

걸어가는 방식이다.

사람을 대하는 태도이며,

하루를 살아내는 자세이며,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다.

어른은 모든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길을 잃더라도

다시 방향을 찾을 줄 아는 사람이다.

천천히 걸어도 괜찮다.

잠시 쉬어도 괜찮다.

다만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잊지 말아야 한다.

나는 지금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가.

───

맺는 말

어른천국을 향하여

한강의 기적은

"잘살아보세"라는 꿈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정말 많은 것을 이루었다.

이제 또 다른 기적이 필요하다.

어른이 존중받고,

경험이 지혜로 대접받으며,

주름이 아름다운 훈장이 되는 세상.

늙은이가 아니라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나는 그 세상을 어른천국이라 부르고 싶다.

어른천국은 먼 곳에 있지 않다.

한 사람의 따뜻한 눈빛 속에 있고,

한 마디의 경청 속에 있으며,

한 걸음의 배려 속에 있다.

그리고 그 길은

언제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누가 붙잡고 있는가.

무엇을 사용할 것인가.

어디로 걸어갈 것인가.

그 질문을 품고 걷는 사람은
이미 새길 위에 서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 길 끝에서 우리는 만나게 될 것이다.

노인이 아니라,
존중받는 어른으로.

• 이 글은 저자가  AI와 주고 받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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