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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회> '감정기복의 음악' F 단조
숱한 기행으로 유명했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F 단조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표현했다. 남다른 해석의 보유자였던 굴드는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연주자 중 한 명이었다. 소니뮤직엔터테인먼트 제공
독특한 해석으로 수차례 그래미상을 받은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는 만약 자신이 어떤 조성이 될 수 있다면 "F 단조가 되겠다"고 했다. 이 조성이 "복잡함과 안정, 음탕함과 꼿꼿함, 회색과 짙은 색조 사이의 중간 어딘가에 있다"는 이유를 댔다. 글렌 굴드는 진지한 음악가였지만, 한여름에도 겨울옷을 입고 다니는가 하면 고집스러울 정도로 악수하기를 꺼렸던 괴짜였다. 진중한 곡을 칠 때도 다리를 꼬고 앉아 페달을 밟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등 종잡을 수 없었다. 그는 어떤 조성이 자신의 분신인지 알고 있었다.
'감정기복의 조성' F 단조
F 단조에서는 감정기복이 느껴진다. 다른 단조들처럼 그저 어둡기만 한 게 아니라 격렬함과 열정이 존재한다. 하지만 또 깊고 깊은 우울함이 공존한다. 그 불안정 때문에 F 단조의 작품을 듣는 사람은 슬픔에 더해 전율로 몸서리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된다.
그런 혼재된 감정이 잘 나타나 있는 작품 중 하나는 멘델스존의 현악사중주 6번이다. 멘델스존의 음악적 동지이자 사랑하는 누나 파니의 죽음을 기리며 쓴 레퀴엠이다. 1악장을 들어보면 처음부터 현들의 강렬한 트레몰로가 격정을 토하고, 이후 미풍이 잠깐 살랑이는 듯하지만 이내 먹구름이 또 밀려온다. 상실감으로 가득 찬 작곡가의 슬픔과 분노, 체념이 모두 표출된다. 9월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KBS교향악단 실내악 공연에서 연주가 예정돼 있다.
F 단조로 쓰인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23번 '열정'도 변화무쌍한 감정을 품고 있다. 베토벤 교향곡 5번에서 사용된 '운명의 동기'를 닮은 리듬이 소나타 23번에도 시종일관 활용된다. 격렬한 고통과 애처로움 속에서도 이따금 찾아오는 내면의 안식이 인상적이다. 물론 베토벤 작품답게 운명을 거부하며 힘차게 나아가려는 기개도 나타난다.
베토벤 소나타의 '열정'이 단지 열렬한 애정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듯, 차이코스프키의 6개 교향곡 가운데 가장 열정적인 곡으로 평가받는 교향곡 4번에도 극단의 감정들이 교차한다. 차이코프스키가 교향곡 4번을 쓴 1878년은 이혼과 경제적 궁핍으로 불운하던 시기였다. 지난 삶에 대한 회한이 가득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시에 폰 메크 부인이라는 후원자가 등장하면서 앞날의 부푼 기대감을 안기도 했다.
실제로 작곡가는 폰 메크 부인에게 편지로 1악장에 대해 "평화와 위안이 성취되지 않으며, 늘 구름이 드리워 있는 하늘 같은 숙명적인 힘인 '운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4악장에서는 "단순하고 소박한 행복이 아직 존재한다"며 환희를 노래했다. 곳곳에는 13년간 편지를 주고받았던 부인을 향한 감사와 설렘, 애정 등 감정도 배어있다. 청주시립교향악단이 15일 청주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F 장조는 목가적인 봄의 조성이었다. 반면 F 단조는 비발디 바이올린 협주곡 '사계' 중 '겨울'에 쓰였다. 1악장에서는 한겨울의 칼바람을 닮은 날카로운 선율이 펼쳐진다. 그러다 2악장에 가면 분위기가 급반전된다.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닐 것만 같은 봄바람이 불며 극적 대조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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