ᆢ
세로토닌은 장에서 발견 (약 90%)
[ ] **_세로토닌의 역할
1.기분: 뇌내 세로토닌은 기분을 조절하는데(natural feel good chemical) 정상레벨을 유지하면 집중이 잘되고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더 행복하고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2.소화: 대부분의 세로토닌이 장에 분포하여 장기능과 보호역할을 합니다. 장의 세로토닌 분비가 증가되면 소화를 빨리 시켜 자극적이고 독성인 음식을 빨리 배출시키고 먹는 동안에는 식욕을 줄이는 역할을 합니다.
3. 오심: 소화될 수 있는 것보다 빨리 세로토닌이 장으로 분비되면 구역질이 나게 됩니다.
'오심'으로 인식은 뇌가 하므로 오심, 구토약은 뇌내 세로토닌을
타깃으로 합니다.
4. 수면: 다른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dopamine)과 함께 수면의 질(시간, 깊이)에 관련하며
수면 사이클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을 만드는데도 세로토닌이 필요합니다.
5. 상처치유: 혈소판에서 분비되어 상처를 치유하는데 세동맥(arterioles)을 수축시켜
혈류를 느리게 조절하여 상처치유의 중요과정인 혈전생성을 돕습니다.
6. 뼈건강: 뼈의 강도에 관련하여 세로토닌의 레벨이 높으면 뼈를 약하게 하여 골절이나
골다공증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7. 성건강: 도파민과 같이 역할을 합니다.
세로토닌은 적정량이 있을 때 신체적, 정신적으로 가장 건강한 상태를 유지합니다.
혈액 내 세로토닌의 정상범위는 101~283ng/ml입니다.
***_ 세로토닌을 증가시키는 방법에는 트립토판 함유 음식 섭취, 햇빛 쬐기, 보충제 섭취, 운동, 스트레스 낮추기 등이 있다.
트립토판이 많이 함유된 음식에는 연어, 달걀, 치즈, 칠면조, 두부,
파인애플, 견과류, 귀리, 김치, 요구르트, 시금치 등이 있는데 먹는다고 수치가 바로 올라가지는 않는다.
채소, 과일, 통곡류등 탄수화물을 섭취하면 체내에 인슐린이 분비되는데
이럴 때 근육이 더 많은 아미노산을 끌어들이게 하여 트립토판이 뇌내로 들어가는데 다른 아미노산과의 경쟁을 낮추게 합니다.
**_세로토닌은 도파민과 비교되기도,...
세로토닌이 정적인 만족감에서 느끼는 행복에 더 가깝고, 도파민은 도전하고 성취해서 느껴지는 능동적인 행복입니다.
식욕과 관련해서는 다른 역할을 하는데
*_도파민은 배고픈 감정을 야기하고(뇌에서 주로 저장)
*_세로토닌은 배고픔감정을 억제(주로 장에 분포)하는 식으로 나타납니다.
스마트폰ᆢㆍ도파민 때문이다.
⟪인스타 브레인⟫의 저자 안데르스 한센은 도파민을 우리의 '엔진'으로 표현한다.
뇌의 보상 경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파민은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선택하게 만든다. 보상 경로 덕분에 우리는 생존에 유리한 행동을 취할 수 있었고, 이를 후손에게 물려주어 오랜 세월 지구상에서 성공적으로 살아왔다.
음식 섭취, 짝짓기, 타인과의 교류 등 생존에 필수적인 일은 도파민을 높이는 대표적인 행위이다. 우리의 뇌는 도파민 분비를 유발하는 일을 할 때마다 그 패턴을 감지한다. 쾌락이라는 보상을 얻을 수 있는 특정 행동을 계속해서 수행하면 우리의 신경 회로에 패턴이 새겨진다. 하지만 도파민은 빠르게 대사되어 그 효과가 사라지므로 뇌는 가능한 한 빨리 그 느낌을 되찾으려 노력하게 된다. 그 보상을 정기적으로 원하는 것이다.
스마트폰도 보상 경로에 관여하여 도파민을 높인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는 SNS 메시지가 오면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도 스마트폰을 열어 보고자 하는 강한 충동을 느낀다.
뇌는 스마트폰과 도파민을 연관 짓기 시작했고, 도파민의 보상을 얻기 위한 손쉬운 수단인 스마트폰 사용을 갈망하고 그것이 습관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스마트폰에서만 이런 일이 생길까?
그러나 스마트폰은 우리를 다른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시간 대부분을 주변 사람들과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고,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고, 페이스북에 글을 포스팅하며 보낸다. 이런 활동은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픈 인간의 기본적 욕구와 관련되어 있다.
메시지나 소셜 미디어 관련 앱 등을 통해 스마트폰으로 받는 알림은 우리의 뇌에서 보상 경로를 활성화하여 도파민 분비를 높인다. 스마트폰은 우리 삶의 가장 기본적 욕구 중 하나인 인간관계, 즉 사람 간의 소통을 제공하는 도구인 셈이다.
우리는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 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불확실성은 동시에 보상 경로를 자극할 수도 있다. 메일이나 SNS의 알림음에 반응해 스마트폰을 집어 드는 우리는 "이번에는 중요한 메시지일 거야." "내가 보낸 질문에 대한 답이 왔겠지."라며 기대하는데, 이럴 때마다 우리 뇌에서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SNS에 글, 사진, 영상 등을 올렸다고 생각해 보자. 콘텐츠를 올리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조회 수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진다. 댓글은 달리지 않았는지, '좋아요'는 몇 개나 늘었는지도 확인하고 싶어진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집어 든다. 하지만 누군가가 '좋아요' 버튼을 눌렀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전해지지는 않는다. SNS업체는 우리의 보상 경로가 최대로 활성화될 때까지 기다리게 만든다.
[ ] 불확실한 순간을 최대한 연장하는 것.
그때마다 우리 뇌에서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도파민이 분비되고 중요한 문서 작업을 하다가도 스마트폰을 열어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용자들은 이런 현상에 중독되어 더 많은 '좋아요'와 댓글을 얻기 위해 자신의 SNS에 끊임없는 사진과 글을 올린다. 이용자들이 많이 사용하면 할수록 SNS를 운영하는 사업자는 더 많은 수익을 올리게 된다. 그들은 심리학자, 신경과학자 및 사회과학자 등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 뇌에서 도파민 분비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중독성이 강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
*_뇌 속에 행복이 있다고?
• dopamine은 뇌 속의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다. 확실한 것은 보상과 기쁨에서의 역할을 한다.
• 때로 중변연계 보상 경로mesolimbic reward pathway를 가리켜 도파민 보상 경로라고 부르기도 한다.
• 예상했던 보상이라면 초기 도파민 분비량은 급증했다가 점차 줄어든다. 예상하지 못한 보상이라면 더 오랜 시간 동안 도파민 분비량은 증가하게 된다.
• 도파민은 분명 우리가 무언가를 즐기는 능력과 관계된 중요한 요인이다.
*_endorphin도 기쁨을 일으키는 대표적인 신경전달물질이다.
초콜릿을 듬뿍 먹었거나 흥분된 섹스를 하거나 어쨌든 엔도르핀이 분비되면 경이롭고 강렬하며 아찔하고도 따뜻한 느낌이 우리의 마음속에 퍼져나간다.
**_엔도르핀의 힘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기적 같은)(믿을 수 없는)(경이로운)’ 등 많은 수식어를 갖다 붙이지만, ‘즐길 만한’이라는 표현은 거의 쓰지 않는다.
(예를 들면, ‘러너스 하이’)
따라서 엔도르핀의 기능은 기쁨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을 방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엔도르핀을 ‘기쁨을 유발한다’고 설명하는 것은 마치 소방차를 ‘물건을 홀딱 젖게 만드는 기계’라고 설명하는 것과 비슷하다.
맞다.
엔도르핀은 기쁨을 유발한다. 하지만 틀린 게 있다. 그게 원래 목적은 아니라는 거다.
당신이 중요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상태라고 하자. 그 업무를 끝마쳤을 때 뇌는 약간의 엔도르핀을 분비시켜 우리로 하여금 “끝났어. 이제 다른 걸 해도 돼”라고 느끼도록 해준다. 정확히 말해서 쾌감을 생성하지는 않지만 스트레스를 줄이고 따라서 우리의 안녕과 행복에 기여한다.
이것이 행복을 유지하기 위한 엔도르핀의 예방적 기능을 보여주는 증거다.
도파민과 엔도르핀에 관한 주장의 공통적 문제점은 ‘행복’을 ‘기쁨’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분명 즐거움을 경험하는 동안 행복을 느끼는 건 가능한 일이지만(게다가 일반적이지만), 진실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 이상으로 훨씬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은 일련의 기쁜 순간들 그 이상이다. 행복은 충만함, 만족, 사랑, 관계, 가족, 동기부여, 웰빙, 그 외에도 페이스북 밈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단어와 관련이 있다. 이처럼 좀 더 ‘심오한’ 것을 뒷받침해주는 화학물질이 있지는 않을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중 후보를 하나 꼽으라면 옥시토신 oxytocin을 들 수 있다. 옥시토신은 보기 드문 평판을 받고 있다. 바로 ‘사랑’의 호르몬, 혹은 ‘포옹’의 호르몬이라는 것이다.
연인 간, 친척 간, 친한 친구 간의 관계는 사람들을 오랫동안 행복하게 만든다. 옥시토신은 이러한 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옥시토신은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강화시키는 데 중요한 일을 하지만 성관계를 할 때도 분비된다. 흔히 ‘프렌즈 위드 베네핏Friends with benefits’(헌신적인 애정 없이 육체적인 관계만 갖는 관계)이라고 불리는 관계를 유지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이유일 것이다. 옥시토신 덕분에 성적인 관계는 상대에 대한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꿔놓게 되고, 결국 단편적인 육체적 매력이 진실한 애정과 열망으로 변모되는 것이다.
사랑을 나누는 동안 옥시토신이 진짜 ‘사랑을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다.
옥시토신은 남성보다 여성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긴 하지만 남성에게도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한 연구 조사결과에 따르면 옥시토신 처방을 받으면 이미 파트너가 있는 남성의 경우 다른 싱글 남성에 비해 매력적인 여성과 더욱 거리를 둔다고 한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옥시토신 분비량이 증가하면 남성이 자신의 파트너에 대해 더욱 충실해지고, 자신의 행동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좀 더 관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즉, 매력 있는 낯선 여성과의 관계에서 특히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을 경우에는 더욱 조심해서 행동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으로 옥시토신은 기존에 맺은 로맨틱한 관계를 더욱 강화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옥시토신이 인간의 뇌가 사랑, 친밀감, 신뢰, 우정, 사회적 유대관계 등을 경험하는 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ᆢ 대부분의 경우 옥시토신은 단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나 집단과의 사회적 관계가 강화될수록 그 관계 밖에 있는 사람에 대한 적대감은 증가할 수 있다.
*_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옥시토신은 당신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만든다는 거다. 만약 인종차별이 행복에 있어 중요한 거라면 나는 인간이 행복을 누릴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이처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아마 누군가가(당신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이 다른 사람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가질 때 심한 부러움이나 분노, 심지어 증오를 느끼는 걸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질투로 인한 분노나 피해망상적인 의심에 빠져 있는 사람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하지만 ‘행복한’이란 단어는 결코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serotonin이 그 답일 수도 있다.
세로토닌은 매우 다양한 신경 프로세스에 사용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수면과 소화를 조절하고 우리의 주제와 가장 밀접하게 관련된 기분을 조절하는 등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한다.
*_세로토닌은 우리가 좋은 기분, 소위 ‘행복’을 느끼는 데 아주 중요해 보인다. 현재 가장 많이 처방되는 항우울제는 뇌의 세로토닌 수치를 증가시키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통상적인 생각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우울증은 세로토닌 감소로 인해 일어난다고 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프로작이나 이와 비슷한 약들은 SSRIs(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재,Selective Serotonin Reuptake Inhibitors)로 분류된다. 세로토닌은 시냅스로 분비되어 신호를 보낸 후에 분해되거나 파괴되는 것이 아니라 뉴런에 의해 재흡수된다. SSRIs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재흡수를 막는다. 그 결과 시냅스에서 세로토닌이 잠시 분비되면서 다음 뉴런에서 어떤 활동이 한 차례 급격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세로토닌 농도가 계속 유지됨으로써 활동이 오랫동안 일어나고, 관련 수용체를 계속해서 자극하게 된다. 만약 토스터기가 오래 되서 빵이 다 구워지기도 전에 자꾸 빵이 튕겨 나온다면, 빵을 제대로 굽기 위해선 토스터기 안에 빵이 원하는 만큼 구워질 때까지 좀 더 오래 두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도 비슷한 논리다.
분명히 대답하지만 그렇지 않다.
사실은 (아직) 아무도 세로토닌의 증가가 뇌에서 실제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모른다. 만약 단순히 행복한 감정을 유발하기에 세로토닌 양이 부족한 거라면 문제는 간단할 것이다. 하지만 신진대사나 뇌가 움직이는 속도를 봤을 때 SSRIs는 세로토닌 수치를 거의 즉각적으로 증가시킨다. 그런데 대부분의 SSRIs는 정량을 복용한 뒤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몇 주가 걸린다.
**_ 따라서 행복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세로토닌 자체가 아니라 세로토닌이 간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다른 어떤 대상이다.
어쩌면 진짜 문제는 접근방식에 있을지도 모른다. 강력한 신경적 특성의 근원을 단순히 일개 분자로 돌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원리가 맞다는 말은 아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행복 호르몬’에 침투할 수 있는 방법이라든지, 간단한 식이요법이나 운동으로 뇌 속 관련 물질의 분비량을 증가시켜 영원한 삶의 만족감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글이나 칼럼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근본적으로 행복의 근원을 특정 화학물질에서 찾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접근법인 듯하다
화학물질이 행복에 관여하는 것은 맞지만 그 근원은 아니다. 50파운드짜리 지폐는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종이로 만들어진다. 하지만 종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경제적 가치를 갖는 건 아니다.
여기서 언급한 화학물질과 행복의 관계 역시 종이와 돈의 관계 같을 수 있다. 즉, 이들 덕분에 행복이 유발되지만 그 역할은 대부분 우연적인 것일 수 있다는 말이다.
[ ] 뇌 속의 행복처리 영역
그럼 특정 화학물질로 인해 행복이 생기는 게 아니라면 행복은 도대체 뇌의 어느 부분에서 생기는 걸까
뇌 속에 행복을 처리하는 특정 영역이 있는 걸까? 이 영역이 뇌의 다른 영역으로부터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일에 대한 정보를 취합해서 평가하고, 이 경험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틀림없다고 인식한 다음, 그토록 바라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우리가 경험하도록 만드는 걸까? 만약 화학물질이 연료라면 이 특정 영역은 엔진 역할을 하는 걸까?
분명 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결론을 내기 전에 조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신경과학자들에겐 호황기다. 뇌과학이나 그 원리는 거의 주류 학문으로 편입되었고, 미국과 유럽에서는 투자를 넉넉히 받은 뇌 관련 연구 프로젝트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_뇌 원리에 관한 수많은 책과 기사, 뇌와 관련된 새로운 성과나 발견을 담은 뉴스도 쏟아지고 있다. 정말 신경과학자로서 신나고 유익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주류로서의 인기를 누리는 데에도 문제가 따른다. 예를 들어, 신문에 글을 쓰려고 하면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독자는 전문 교육을 받은 과학자가 아니다. 그러니 전문용어는 쉽게 바꾸거나 배제시켜야 한다. 내용도 간결해야 하며, 오늘날처럼 경쟁이 심하고 독자들의 관심을 추구하며 인상적인 표현을 요구하는 언론 분위기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당신이 과학 관련 글을 한 번이라도 읽어봤다면, 대부분의 과학자가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세심하게 계획된 실험에 관한 난해한 기술 보고서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바꾼다는 것은 내용을 엄청나게 수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운이 좋다면 전문 과학기자나 경험이 풍부한 과학 커뮤니케이터가 내용을 수정해줄 수도 있다. 이들은 주요 언론사가 무엇을 바라는지 이해하면서도 어떤 정보가 중요한지 어떤 내용을 편집해야 이해가 쉬운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쉽고 훌륭한 과학뉴스는 아주 드물다. 대부분은 신문사의 경험이 없거나 능력이 부족한 언론인이나 심지어 인턴이 쓴 글이다.• 혹은 해당 연구와 관련된 대학이나 연구소의 홍보팀일 수도 있다. 자신들의 연구 성과나 노력에 대해 대중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하는 이들이다.
•과학뉴스는 주요 언론사 입장에선 아직도 틈새시장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서열이 낮은 사람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일전에 나는 영국의 한 주요 일간지에서 과학 이야기를 쓰는 기자를 돕기 위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어리바리하고 서툴렀던 그 사람은 사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엔터테인먼트 부문 담당이었다고 털어 놓았다.
누구든지 간에 이들은 내용을 수정하고 편집하면서 실제 내용을 왜곡하거나 심지어 잘못 해석하기도 한다. 실제 정보를 왜곡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를 생각해보면(관심을 끌기 위해 과장하거나 특정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가지고 한 가지 이슈만 집중 보도하는 등) 뉴스에서 접하는 많은 과학 기사들이 실제 실험 내용과 상당히 거리가 있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관련 기사도 많고 관심도 많이 받지만 그 밑바탕은 아직 정리가 안 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생소하며 잘 알려지지도 않은 신경과학과 같은 분야의 경우 이 같은 정보 왜곡은 뇌의 원리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화된 정보를 양산할 수 있다.
**_그런 사례로 계속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뇌가 하는 모든 일에는 특정 ‘부분’, ‘영역’ 혹은 ‘센터’가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투표 성향이나 종교, 애플사 제품에 대한 집착, 자각몽, 혹은 페이스북 중독은 뇌의 어떤 어떤 영역이 담당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접하게 된다. 뇌는 모듈식 덩어리로서 각각의 고유 기능을 수행하는 명백히 정의된 개별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는 생각은 더욱 일반적이다. 하지만 실제로 뇌는 그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뇌의 특정 부분이 특정 기능을 담당한다는 이론은 수 세기 전에 나온 것이며, 역사적으로 봤을 때 꽤나 거슬리는 부분도 있다.
골상학phrenology을 생각해보자. 골상학은 두개골 모양이 개인의 성향을 연구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_ 그 논리는 꽤나 단순하다. 골상학에 따르면 뇌는 함께 작용하는 사고영역의 집합체라고 한다. 모든 생각이나 행동, 성향은 뇌 속에 그에 해당되는 영역이 있으며, 마치 근육처럼 한 영역이 더 많이 사용되거나 힘이 강해지면 그 크기도 커진다고 주장한다. 상대적으로 더 똑똑한 사람이 지능을 처리하는 영역이 더 크다는 말이다.
어릴 때의 두개골은 아직 가변적이고,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점차적으로 딱딱해진다. 골상학자에 따르면 뇌 모양이 두개골 모양에 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뇌의 어느 영역이 더 크거나 더 작으면 두개골이 튀어 나오거나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특성이 뇌의 타입, 결국 한 개인의 재능과 성격을 결정짓는다고 믿었다. 경사진 이마는 지능이 낮다는 의미이며 뒤통수가 덜 튀어나온 것은 예술적 재능이 부족하다는 식이다. 지나치게 간단한 발상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골상학이 탄생했던 시기가 19세기 초반이었고, 그 당시에는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구체적이고 확실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은 별 의미도 없을뿐더러, 일상적인 관행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골상학은 전혀 말이 안 된다.
아주 어릴 때의 두개골은 상대적으로 부드러운 상태일지 모르나 어쨌건 상대적으로 조밀하고 단단한 여러 개의 골판도 가지고 있다. 외부의 힘으로부터 뇌를 보호하기 위해 발달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골상학은 뇌를 둘러싸고 있는 뇌척수액이나 뇌막에 대해선 고려하지도 않았다.
스펀지 같은 회백질로 이루어진 뇌 영역의 크기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면 딱딱한 두개골 모양이 눈에 띄게 변형될 수 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이 두개골 모양이 성격적 특성과 부합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다행히도 골상학은 대체과학으로 여겨졌을 때조차도 점점 신뢰를 잃어 갔고, 결국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또 하나 다행인 점이 있다. 골상학이 아주 불쾌한 방식으로 사용됐다는 사실이다. 백인이 다른 종족보다 더 우월하다거나 여성이 지적 능력 면에서 열등하다는(일반적으로 여성은 체구가 더 작고 따라서 두개골이 더 작다) 증거로 사용된 경우다. 따라서 골상학은 과학계 주류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아주 불미스러운 평판을 받게 됐다.
또 하나의 부정적인 결과는 현대 신경과학자들이 뇌의 ‘모듈론’, 즉 뇌는 특정 역할을 담당하는 특정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주장에 등을 돌리게 된 것이다. 많은 과학자들은 뇌가 전체 구조상 큰 차이가 없는 다소 ‘동질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따라서 뇌의 모든 부분이 뇌의 모든 기능에 관여한다고 주장했다. 특정 영역이 특정 역할을 수행한다는 주장은 골상학을 연상시켰으며 따라서 비슷한 의미를 담고 있는 주장은 모조리 차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다.
**_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우리는 뇌에 실제로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특정 영역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단지 이런 영역들은 성격적인 특성보다 좀 더 본질적인 역할을 수행하며, 두개골에 있는 혹으로는 판별할 수 없을 뿐이다.
예를 들어, 측두엽temporal lobe에는 해마hippocampus가 있다.• 일반적으로 해마는 기억을 인코딩해서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방추상이랑은 얼굴을 알아보는 일을 담당하며, 브로카 영역Broca's area은 전두엽frontal lobe의 복잡하고 다채로운 영역으로 언어구사 능력을 맡고 있으며, 전두엽의 뒤쪽에 있는 운동피질motor cortex은 의식적인 몸의 움직임을 관할한다.
**_이 밖에도 뇌 영역은 끝이 없다.
•분명히 해두자면 뇌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좌우 반구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통상적으로 한쪽 반구가 ‘지배적인 힘’을 가지게 되고, 그 결과 왼손잡이 혹은 오른손잡이가 생긴다. 하지만 두 반구 모두 구조적으로는 거의 비슷하다. 즉, 내가 자주 언급하는 ‘해마’ 같은 특정 영역의 경우 실제로 뇌는 그 영역을 두 개씩 가지고 있다. 왼쪽에 하나 오른쪽에 하나 말이다. 동일한 이 두 영역은 함께 작용하거나 서로를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뇌에는 중복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문맥상 이들을 하나의 개체로 부르는 게 더 용이할 것이다.
기억하고, 보고, 말하고, 움직이는 것. 이는 모두 근본적인 프로세스다. 하지만 다시 핵심 주제로 돌아가서, 뇌 속에 행복처럼 좀 더 추상적인 것을 담당하는 영역이 있을까? 아니면 과거의 골상학이나 현재 주요 언론의 정보 왜곡처럼 뇌 구조를 과도하게 단순화시켜서 비논리적인 극단으로 끌고 간 것일까?
행복을 관장하는 특정 영역이 있다는 생각이 터무니없는 건 아니라는 증거가 있다. 수많은 영역이 각각 특정 감정을 처리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해마 옆에 자리한 작은 영역인 편도체amygdala는 기억에 ‘감정적 색채’를 입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_공포심을 자아내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면 그 기억에 공포심을 입힌 것이 바로 편도체다. 실험 중 동물들의 편도체를 제거하면 두려워하는 것이 당연한 대상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또 다른 예는 전두엽, 두정엽parietal lobe 및 측두엽 사이 깊숙한 곳에 있는 섬피질insular cortex이다. 섬피질의 기능 중 하나는 혐오감을 처리하는 것이다. 좋지 않은 냄새가 나거나 신체가 훼손되는 장면을 목격하거나 그와 유사하게 본능적으로 불쾌감을 유발하는 경우 섬피질의 활동이 나타난다. 심지어 누군가가 얼굴에 혐오감을 드러내거나 거북한 것을 단지 상상만 해도 섬피질은 더욱 활발히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뇌에는 많은 사람들이 행복과 같은 느낌이나 감정을 처리하는 몇 가지 영역이 있다. 그렇다면 행복 자체를 관장하는 영역이 있을까? 그 후보 중에 하나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바 있다. 바로 중변연계 보상 경로mesolimbic reward pathway다. 중변연계 보상 경로는 중뇌midbrain(뇌의 깊은 곳에 잘 자리 잡은 영역으로 뇌간 사이에 위치한다)에 있으며, 우리가 기쁜 일을 했을 때 그에 대한 감정적인 보상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기쁨과 반대로 행복과 관련해서, 영원한 행복을 느끼려면 복측 선조체ventral striatum가 관여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어떤 연구에서는 행복을 느끼는 동안 왼쪽 전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이 활성화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_어떤 연구에서는 활성화된 부분이 오른쪽 설전부precuneus라고 주장한다.
**_뇌의 어느 부분이 행복을 유발하는지에 대해 연구해온 일류 과학자조차 매번 다른 대답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렇다고 이상한 상황은 아니다. 뇌는 놀라울 만큼 복잡한 곳이고 과학적으로 뇌를 상세히 연구하는 방법은 아직까지는 꽤나 생소하다. 게다가 추상적인 감정상태를 연구하기 위해 철저하게 분석적인 접근법과 선진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다시 말하면 행복을 단순한 감정에서 분리하기 위한 ‘최고의’ 혹은 ‘정확한’ 방법을 아직 찾고 있는 중이며, 따라서 아직까지는 혼동이나 모순적인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잘못만은 아니다(뭐, 모든 일이 항상 그렇지는 않다). 혼란을 일으키는 요인들은 무지 많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연구자들이 실험대상자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다. 어떤 연구에서는 행복했던 기억을 연상시키는 질문이나 지침을 주고, 어떤 경우는 즐거운 이미지를 보여주며, 또 행복한 감정을 유발하는 메시지나 작업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방법이 사람들을 정확히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는 단정 짓기 어려우며 개개인마다 차이도 매우 크다. 이런 실험은 통상적으로 실험대상자들이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해 대답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방식은 혼동을 배가시킨다.
많은 심리학자들이 실험실이라는 환경하에서 인간이 특정 상황과 관련하여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연구할 때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다.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실험실 환경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며, 따라서 다소 혼란을 느끼거나 위협감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다시 말하면, 이런 상태에서 실험대상자들은 가까이 있는 권위자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여기서 권위자는 틀림없이 연구원일 것이며 실험대상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기에 연구원들이 듣고 싶어할 거라 생각되는 바를 무의식적으로 답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대답은 연구원들이 진정으로 듣고 싶어 하는 것(실험대상자 자신의 마음 상태에 대해 가능한 한 정확히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거다. 여기에는 실험대상자들이 연구원들을 ‘돕기’ 위해, 실제 자신의 감정을 과장하거나 수정하는 리스크가 항상 따른다(일례로, ‘이 실험은 행복에 관한 거다. 그러니 내가 행복하다고 대답하지 않으면 실험을 완전히 망칠 수도 있다’라는 생각). 따라서 의도가 아무리 좋다 해도 이런 태도는 도음이 전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모든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한 개인의 뇌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는 걸 알 수 있다. 만약 실험실 환경에 아주 익숙하거나, 이상한 기계나 연구원으로 인해 위협감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말할 수 있으며, 자기 스스로 실험을 하고 이때 얻은 데이터를 분석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실험에 참여한다면 이런 문제는 단번에 해결될 것이다…
결론이 났다. 챔버스 교수에게 MRI를 좀 빌려달라고만 부탁할게 아니라 내가 연구 대상이 되겠다고도 얘기해야겠다. 그럼 딱 들어맞는다. 나는 내 기분이 행복한지 아닌지 스스로 파악할 수 있고 직업상 너무 익숙할 수밖에 없는 실험실 상황은 나에게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든 쓸모 있고 유익할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할 일은 그냥 스캐너 안에 들어가서 스위치를 켜고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든 다음 데이터를 분석하기만 하면 된다. 그럼 끝이다.
물론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너무 얼토당토않은 이상한 생각이 아닌가 하는 걱정에 휩싸였다. 하지만 다행히도 행복에 관한 연구들을 몇 개만 찾아봐도, 이상한 일들은 너무 자주 일어나지 않는가?
행복에도 공식이 있다면?
2016년 초 나는 초국가적 연구단체 헤도니아의 대표 모르텐 L. 크링겔바쉬Morten L. Kringelbach 교수의 강연에 간 적이 있다.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성공한 덴마크 과학자 배역을 맡았다고 상상해보자. 크링겔바쉬 교수의 모습이 딱 그렇다. 키가 좀 더 작은 것만 빼곤 말이다.
크링겔바쉬 교수의 헤도니아 연구단체는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과 덴마크 오르후스 대학이 협력하여 만들었다.
**_사람들이 기쁨을 경험하는 여러 방식, 특히 기쁨이 건강 및 질병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관해 연구한다. 강연 당시 크링겔바쉬 교수는 연구 결과 알게 된 이상한 사실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너무 신나서 결국 춤을 추게 되는 음악에 대한 애기였다. 많은 사람들이 춤추는 걸 좋아하고 춤추는 걸 보는 것도 좋아한다. 춤은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어떤 사람들은 춤을 춘다는 생각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며, 누군가 자신이 춤추는 걸 본다면 특히나 더 그렇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조차도 절로 춤추게 만드는 노래나 음악이 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것 같을 때 그냥 리듬에 맞춰 손발을 두드리거나 고개를 끄덕거리거나 자기도 모르게 엉덩이와 어깨를 흔드는 정도일지라도 말이다. 춤을 아주 싫어하는 사람인데도 왜 이들은 춤을 추게 되는 걸까?
크링겔바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음악에서 뇌가 좋아하는 스펙트럼이 있다고 한다. 이들의 연구 결과를 보면 사람들로부터 기쁜 반응을 유도하거나 몸을 움직이게 만들려면 중간 수준의 당김음(혹은 예측 불가능성)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음악적으로 표현하자면 음악이 펑키하면서도 지나치게 펑키하지는 않아야 사람들이 좋아하며 춤을 추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_당신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단순하고 단조로운 리듬은 즐겁지 않다(메트로놈에 맞춰서 춤을 한번 춰보고 자신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자). 메트로놈은 당김음의 수준이 낮고 춤을 출 욕구를 일으키지 않는다. 반대로 프리 재즈처럼 혼란스럽고 예측하기 어려운 음악은 매우 높은 수준의 당김음을 사용하기 때문에 춤추게 만드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 물론 이에 대해 반박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아무리 불쾌하고 이상하고 이해하기 힘든 것이라 해도 그걸 좋아하는 사람은 어딜 가나 있게 마련이다. 그냥 그게 사람인 것이다.
딱 중간 수준의 음악(연구원들은 제임스 브라운과 같은 펑크 뮤직을 가장 많이 언급했다. 크링겔바쉬 교수가 따라 춤추며 우리를 즐겁게 해준 음악이기도 하다), 예측가능성과 혼란스러움 사이 딱 중간 지점에 있는 음악을 뇌는 좋아한다. 대부분의 모던 팝이 이 범위에 속한다. 이 때문에 모던 팝에 속하는 특정한 곡을 아주 싫어하며 그 곡에 관한 한 모든 부분이 다 싫다고 공개적으로 선언까지 하고서도, 막상 가게 안에서 이 곡이 흘러나오면 리듬에 맞춰 발을 두드린다.
여기서 핵심은 예측가능성과 혼란스러움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이루고 있는 음악은 (어떤 이유로 인해) 우리 뇌 속에서 기쁨을 유발한다. 그리고 우리의 신체적인 반응을 이끌어 낼 정도로 행복을 느끼게 만든다.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도록 결정하는 뇌의 근본적인 프로세스가 명명백백한 것은 아니다.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행복하지 않게 만드는지에 대해 ‘네’, ‘아니오’로 간단히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대게 그 무엇이 적당히 있어야 우리를 행복하게 해줄 가능성이 커지며, 그보다 너무 많거나 적으면 반대의 결과를 초래한다. 소금을 생각해보자. 음식에 소금을 너무 적게 넣으면 맛이 없다. 너무 많이 넣어도 맛이 없다. 딱 알맞은 양을 넣어야 맛이 있으며, 그래야만 불쌍한 웨이터가 이제 다른 테이블로 옮겨갈 수 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이상한 연구결과가 있다.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사실 뇌가 아니라 장이라는 점이다. 뇌와 소화기관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진부한 표현이나 속담(“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그의 배를 채워줘라”라거나 “빈속으로는 생각할 힘도 없다” 등)이 많기도 하지만, 장 기능이 우리 정신 상태에 직접적인, 더 나아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주는 과학적인 증거가 많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것이다.
위나 장이 우리에게 필요한 음식이 지나가는 구불구불한 튜브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걸 기억하자. 그 자체만으로 상당히 섬세한 존재다. 장은 자체의 복잡한 신경계(장신경계라 불리며 어떤 경우에는 독립적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따라서 ‘두 번째 뇌’라고도 불린다)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천 종에 이르는 박테리아 수십 조 마리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 박테리아들은 모두 우리의 소화 프로세스에서 특정한 잠재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이들은 어떤 물질을 우리 혈액 속에 그리고 우리 몸 곳곳에 흘려보낼지를 결정한다. 모든 내부 기관과 조직의 활동에 잠재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박테리아들이 우리의 내적인 상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잊지 말자. 뇌는 정교하고 당황스러울 만큼 복잡한 존재이긴 하지만 어쨌건 우리 몸속의 기관이다. 뇌는 우리가 바깥세상을 감지하는 일에 영향을 받을 뿐만 아니라 몸속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도 영향을 받는다. 호르몬, 혈액 공급, 산소량, 그 외에도 생리적인 측면… 이 모든 요인들이 뇌 기능에 영향을 미친다. 몸속으로 무엇이 들어가는지와 관련해 장(그리고 그 속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미루어 보면, 장은 뇌 기능에 있어 간접적이긴 하지만 굉장한 영향을 미칠 거라고 예상된다.
• ‘장-뇌 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