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 * 일 *

삶은 게임이다.

수승화강지촌 2021. 2. 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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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무리 인류가 ‘생각’에만 집착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즐거움과 놀이를 더 선호하는 ‘호모 루덴스’라고 가설하더라도, 여전히 질문의 핵심은 남아있다.

인간은 왜 노는 걸까?

그것은 주어진 여유 시간과는 상관없이 이 세상 대부분 아이는 어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놀이에 투자한다고 가설했다.

특히 경험과 교육 없이도 아이는 스스로 놀이를 선택한다. 그렇다면 놀이는 인간의 타고난 본능 중 하나이지 않을까?



어두움과 파충류를 두려워하는 본능,
이성에게 관심을 보이는 본능,
썩은 음식보다 달고 신선한 음식을 더 선호하는 본능.
대부분 본능에는 생리학적 또는 진화적 기능이 있다.
그럼 놀이의 진화적 기능은 과연 무엇일까?


비고츠키는 “시뮬레이션”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더구나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고 생존해야 할지 태어나기 전 알 수 없다. 눈을 뜨면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에 떨어졌을 뿐이다.

다른 포유류들의 뇌와 비슷하게 인간의 뇌 역시 ‘결정적 시기(critical period)’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난 뇌는 결정적 시기 동안의 경험을 통해 완성된다. 여기서 자주 사용된 뉴런 간의 연결고리는 강화되지만, 사용되지 않는 신경세포 간의 연결성은 사라지거나 약해진다.


어린 시절 뇌는 마치 젖은 찰흙 같은 유연성을 가지고 있기에 경험을 통해 노출된 환경에 최적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문제가 하나 생긴다. 결정적 시기에 모든 걸 경험해보기에는 세상이 너무나 다양하고 위험하다. 하지만 만약 직접 경험할 수 없는 상황과 경우를 놀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미리 경험한다면?


“내가 만약 공주를 구해야 하는 왕자라면?”, “내가 만약 남극을 탐험한다면?” 마치 파일럿이 비행 시뮬레이션을 통해 실제 상황에 대비하듯, 인간은 놀이라는 ‘롤플레잉’, 그러니까 ‘역할 수행’ 게임을 통해 자신의 인생이라는 ‘극한 게임’을 준비한다는 것이다.


만약 놀이의 핵심이 “인생 시뮬레이션”이라면, 우리가 지금 사는 이 세상 그 자체는 어쩌면 MMORPG, 그러니까 ‘대규모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assively Multiplayer Online Role-Playing Game)’이지 않을까?


누구는 국회의원, 누구는 과학자, 누구는 코미디언, 그리고 다른 누구는 유명 요리사 역할을 하는 그런 게임 말이다.


모두 같은 세상에서 태어나 출세, 돈, 사랑, 행복이라는 게임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발버둥 치기에, 나는 다른 이들의 경쟁자이며, 타인은 내 성공의 걸림돌이다.

내가 성공하기 위해선 다른 누군가가 실패해야 하고, 다른 이가 이기기 위해선, 내가 패자가 돼야 한다.

더구나 세상이라는 게임에서는 ‘UNDO’가 불가능하고 ‘SAVE & EXIT’ 버튼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세상이라는 잔인한 게임에서 검투사이다.


모두가 같은 게임을 해야 하기에 승자보다 언제나 패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 인생. 그런데 최근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온라인 세상에선 언제나 내가 주인공인 새로운 형태의 롤플레잉 게임이 가능해졌으니 말이다. .


국내 기업들이 개발한 MMORPG 게임들이 세계적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오늘날. 어쩌면 그들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놀이를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인생 시뮬레이션’이다.

하지만 이제 모두가 같은 세계에서 경쟁할 필요는 없다. 나를 위한, 언제나 내가 중심이자 주인공인 세상. 현실에선 다음 달 월급을 눈 빠지게 기다리는 신입사원이지만, 나만의 세상에서는 영웅이자 신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앞으로 더 발전할 인공지능 기술을 통해 지금까지 내 세계관 안에서만 존재하던 NPC(Non-Player Character, 인간이 아닌 비플레이어 캐릭터)들이 우리가 사는 세상으로 문자와 e메일을 보내고, 유튜브 영상과 생일선물을 추천하는, 현실과 게임의 세상이 서로 연속되는 하이브리드 인생 시뮬레이션을 상상해볼 수도 있다.


놀이와 게임이 인류 문명을 가능하게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고도로 발달한 문명은 더는 모두가 공생하는 ‘공공 세상’이 아닌, 한 명의 소비자를 위한 ‘개인 세상’을 가능하게 한다. 대량 생산이 아닌 개인화한 소비, 매스 미디어가 아닌 개인 미디어, 그리고 하나의 세상 시뮬레이션이 아닌 각자가 개인의 우주를 은신처로 삼는 세상에서 우리는 앞으로 살게 될지도 모른다.

현실은 잔인하고 나에게 무심하지만, 미래 인류는 어쩌면 자신만을 위한 ‘세상 시뮬레이션’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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