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과거의 진보가 사회적· 물적· 제도적 진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것이 인간의 자유를 확대하는 바탕이었다면,
지금처럼 물질적 수준이 상당한 수준으로 진척
되고,
자유민주주의가 절차나 제도로서 어느 정도 뿌리
를 내린 사회에서는
‘인간 자체의 진보’
즉 ‘의식·문화의 진보’
가 사회적 진보를 견인하는 시대로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공자의 사상은 자유로운 인간, 즉 진보적 인간이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상상력과 영감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
두번째
얼마든지 있어도 괜찮다.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을 배척하는 것도 모두 ‘자기를 강화’시킵니다.
"기분 좋음의 추구"는 끌림 속으로 빠져드는 것이고,
"기분 나쁨을 멀리하는 것"은 밀침 속으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끌림이나 밀침은 모두 그것을 일으키는 ‘나’라는 현상
을 강화시킵니다.
그런 집착에 의해 많은 업을 지으면 일체의 심신의 고통을 받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습관, 패턴들이 몸과 마음의 고통을 일으켜요.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이 다 물의 모습일 뿐입니다. 나는 물의 모습이 아니라 물 자체이기 때문에 이런 물의 모습들은 얼마든지 있어도 괜찮습니다. (저자 주ᆢ월인)
세번째
우리는 만사가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 심지어
생각하는 상태(thinkingness)도 저 스스로 알아서 일어나고 있
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생각할
지 결정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자신의 생각하는 상태에 무심해지면 세상에 대해서도 무심해집니다.
주변 세상이 나의 협조 없이도 돌아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며 움직이고 말하도록 내가 돕지 않아도 다들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무심해져서 목격자가 되는 일에 들어가세요. 목
격자 되기는 어려운 단계가 아닙니다.
일을 일으키는 나가 존
재한다고 멋대로 생각하는 자기도취를 놓아 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 어떤 것도 아무런 일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 세계에 원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결과만 존재합니다.
네번째
신의 소리는 침묵이다.
침묵은 1,000으로 측정됩니다.
신의 소리는 침묵입니다.
소리가 있으려면 선형성이 있어야 합니다.
소리인 것과 소리가
아닌 것이 있어야 하고, 나아가 그 소리가 배열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만트라를 외거나 ‘오움om’ 같은 것을 말하면 특정 수준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면 소리 뒤의 침묵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래서 소리의 목적은 침묵을 만나는 것입니다.
이렇기 때문에 만트라를 반복하면 때로 변성 의식
상태와 황홀한 느낌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만트라 외기를 멈추면 자신이 사라지는 느낌을 받습니다.(후략. 자세한 내용은
지금여기 29-2호 (2024년 3/4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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