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 * 일 *

이성보다 감성으로 살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수승화강지촌 2021. 7. 16.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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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사는 것가슴으로 사는 것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머리 아프다고 할 때의 상태와 가슴 아프다고 할 때의 상태를 생각해 보면 머리가슴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머리는 주로 개체의 생존과 번성을 위한 두뇌 활동과 관련되는 반면, 가슴은 가슴에 새기다”, “가슴이 내려앉다”, “가슴에 묻다”, “가슴이 벅차다등의 용법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보다 더 깊은 현실이 강하게 경험되는 장소로서 쓰인다.

 

마음의 큰 울림을 나타내는 경우를 묘사할 때에도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라고 하지, “머리를 울리는 감동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영어로는 가슴심장이 똑같이 ‘heart’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슴이 육체의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는 말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가슴은 우리들 존재의 더 광대한 진실을 가리켜 보이는 단어이다. ‘가슴은 나와 너를 따로 구별할 수 없는 존재 전체의 뿌리이면서도 우리들 각자 각자에 스며들어 있는 무엇이다. 그리하여 가슴으로 산다는 것은, 개인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아귀다툼을 하지 않고, ‘한계 없는 지혜와 사랑의 원천으로서의 우리 자신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면서 살아간다는 뜻에 다름 아니다.

 

어떻게 해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은 곧 운명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어떻게 해야 그 파도를 타고 놀 수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치환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운명이란 것을 사주팔자로 국한시켜 보자면,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의 길흉화복이고, 길흉화복은 대체로 재산과 권력과 명예의 크기와 그 따고 잃음과 상관된다. 운명이 나에게 선물하는 희로애락에 좌우되지 않고 그것을 타고 놀기위해서는 사랑이든 권력이든 재산이든 그것의 따고 잃음에 연연하지 말아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험을 통한 내공 쌓기가 필수적이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에고도 그만큼 높아지지만, 에고의 성을 더 높이 쌓기 위한 전투에서 늘 승승장구할 수만은 없어서 필연적으로 실패의 경험이 따르게 마련이고, 재산이 낮아지는 그만큼 자존심도 추락한다. 이런 상승과 추락을 반복할수록 그는 점점 더 자기 자신과 재산을 동일시하지 않게 된다. 내가 가진 재산의 크기를 자신의 크기로 착각하던 데서 더욱 더 벗어나서 재산이라는 것을 내가 부릴 수 있을 때, 그는 비로소 운명의 노예에서 운명의 마스터로 격상될 수 있다. (권력이나 명예 등도 또한 마찬가지다.) 이렇게 볼 때, 운명이란 사람을 더욱 더 본질로서 살게 만들기 위한 커리큘럼이라고 할 수 있고, 이 커리큘럼은 윤회전생을 통하여 더욱 더 심화학습을 하도록 구성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운명의 노예가 아닌 마스터는 재산이나 명예나 권력이 내가 아닌 것을 이미 터득한 사람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재산, 명예, 권력, 사랑이 내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머리도 내가 아니고, 감정도 내가 아니고, 생각도 내가 아니다! 따라서 가슴으로 살기 위해서는 머리와 자신을, 감정과 자신을, 생각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생기는 온갖 부작용을 경험하고 난 뒤라서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할 수 있다.

 

가슴으로 살아가는 법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몸과 마음으로 여기는 것에 너무나 길들여져 왔다.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는 자기 자신이 몸이고 생각이고 감정이라는 확신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 확신은 너무나 깊이 뿌리 내리고 있어서 쉽사리 포기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머리로는 몸과 마음과 감정이 나의 진정한 정체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과 가치관은 너무나도 쉽사리 몸과 마음과 감정을 자기 자신과 밀착시켜 버려서 거리를 떨어뜨려 놓지 않는다.

 

니르말라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법을 연습할 것을 추천한다. 그가 제시하는 수련법들은 사실 모두가 다 가슴으로 보고 듣고 느끼면서 가슴으로 살아가는 법이라고 정리될 수 있다.

 

이 순간 당신이 의식하고 있는 것들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소리, 생각, 당신 주변의 물체들. 머리로부터 보거나 듣거나 지각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리고, 다음에는 그것이 무엇과 같은지를 알아차리십시오. 이제는 서서히 지각의 근원을 가슴으로 내려보세요. 가슴을 지각하라거나 가슴 안에 있는 것을 느끼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 센터로부터 주변을 느껴 보십시오. 처음에는, 가슴 센터에 손을 얹는 것이, 그곳을 당신의 바라봄의 시발점이 되게 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 당신의 머리가 아닌 가슴에 의해서 보여지도록 허용하십시오.”

 

누구나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라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가슴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일 또한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가슴으로 소리나 음악을 듣고, 가슴으로 저녁노을이나 미술 작품을 바라보고, 가슴으로 다른 사람들을 음미하는 시간을 가져보라. 가슴으로 보고 듣고 느끼는 일은 머리로 보고 듣고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풍요로운 경험을 선물해 준다.

 

가슴으로 사는 사람은 수천억 원을 가진 부자와도 같다. 가지고 있는 돈을 아무리 쓰고 또 써도 다 쓸 수가 없다는 그 자유함, 그 풍요로움을 상상해 보라. 가슴으로 사는 것은 그렇게 우리 모두를 마음의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다. 가슴으로 사는 것이야말로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머문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수 있는 묘법인 것이다.

 

사랑 자체가 우리의 본성이다

 

머리를 통하여 생각하고 계산하고 판단할 때마다 의식은 단단하게 조여지고 수축된다. 근육이 수축된 상태를 유지하려면 노력이 요구되듯이, 의식이 조여진 상태는 억지로 힘이 들어간 부자연스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태는, 아주 가는 빨대로 음료수를 마시는 것처럼 만족스럽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런 상태에서는 자기만의 견해에 따라 자기만의 이익을 생각하고 있기 쉬워서 관점이 좁아져 있기 마련이다. 머리로 하는 생각과 의식은 근본적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경이로운 경험을 하고 있을 때라도, 그것 모두를 흡수하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아서 그 경험에 더 매달리고 싶어 한다. 머리로 헤아리면서 사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지게 되면, 불만과 불완전을 느끼는 것 자체가 정상인 것처럼 되어 버린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우리 모두는 머리로 생각을 굴리면서 살아간다. 이것은 코를 바짝 들이대고 TV 스크린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생각의 내용물이 의식 바로 앞에 놓여지게 된다. 가슴으로 중심을 내려보내면, 생각은 계속해서 일어나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가슴 아래로부터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 높은 곳에서 경치를 내려다보듯이 생각의 내용물들을 더 멀리서 조망하게 된다.

 

 

가슴으로 바라보기가 특별히 어렵거나 심지어는 불가능한 일처럼 여겨질 때, 더 열린 관점을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경험에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간단하게 열린 상태가 될 수 있다. 우리의 감각, 생각, 느낌, 사물들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거리를 두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경험에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 모든 것에 거리를 두기만 하면, 우리는 경험에 함몰되지 않고 지금 여기에 머물 수 있다. 나와 사물 사이, 나와 나의 감각기관이 작용하는 사이, 사물과 사물 사이에는, 언제나 빈 곳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것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거기에는 반드시 그것이 존재할 만한 충분한 공간이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빈 공간이 존재한다. 음악이 음표와 음표 사이의 침묵인 것처럼, 모든 존재를 존재되게 하는 것은 사이사이의 공간이고, 그 공간을 의식함으로써 우리는 더욱 더 부분이 아닌 전체를 살 수 있게 된다.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보고 듣고 느끼게 되면, 의식이 더 넓어지고, 더 개방적이 되고, 의식과 의식 안에 있는 대상들 사이의 경계선이 더 희미해지는 것처럼 여겨진다. 인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 서로 연결되어 있고 하나라는 느낌이 더 뚜렷해지고, 머릿속을 오가는 생각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해지며,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

 

의식이 가슴을 통하여 흐를 때는, 일어나고 있는 진실의 훨씬 많은 부분을 포함하게 된다. 그 결과, 경험이 훨씬 더 만족스럽다. 삶을 좁은 시각에서 받아들이려고 애쓰는 대신, 가슴의 내용을 깊이 흡수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일상적인 경험에서도 충만함과 풍요로움을 만끽할 수 있게 된다. 삶이 늘 부족하고 옹색하게 여겨진다면, 그것은 머리로 바라보는 옛 습관으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가슴으로 사는 사람은 아낌없이 사랑을 베풀 줄 안다. 사랑 자체가 우리의 본성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머리가 아닌 가슴을 살게 될 때, 삶에는 더욱 더 강렬하고도 광대한 아름다움과 완전함, 놀라운 신비가 현존하게 된다. 가슴으로 살면서 아낌 없이 사랑을 줄 때, 삶은 가능성과 창조의 무한한 놀이마당이 된다.

 

 

한줄 요약

이성보다 감성으로 살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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