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 * 일 *

구호는 메아리 ...(!)

수승화강지촌 2021. 7. 14.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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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삶을 고쳐 쓸거다》

어떻게 하면 대중들이 현명해지고 똑똑해지는 것일까?


<니코마스 윤리학>에서
'미덕 ethos' = '습관 ethike'


*** 왜냐하면 인간의 본성은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어떤 방향성도 가지 않는다고 보았다.

후천적으로 어떻게 방향을 잡아서 습관을 들이는지가 중요하다고 여겼다. - 중략 -​



우리는 악기를 연주해 봐야 연주자가 된다. 마찬가지로 올바를 행동을 해야 올바른 사람이 되고, 절제 있는 행동을 해야 절제 있는 사람이 되며, 용감한 행동을 해야 용감한 사람이 된다.​



즉 어떤 미덕을 개발하는 것은 악기를 배우는 것과 같다. 피아노 치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갖가지 말보다 먼저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소통하는 사람, 혹은 상생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실제로 소통하고 상생을 실천해야 한다.


[마음가짐은 나중이다]

일단 어떤 미덕을 실천해서 자기 안으로 가져왔다면 반복해야 한다. 정해진 물의 흐름은 다른 방향으로 습관을 들일 수 없지만, 미덕은 탁월함의 방향으로 습관을 들일 수 있다.

- 중략 -

아리스토텔레스의 인성론을 듣다 보면, 우리가 통상 갖는 논리적 과정에 일종의 의심을 들 수가 있다. 본래 '마음가짐'에서 어떤 행동이 나오는 것 아닌가? 소통을 하겠다는 마음가짐이 있고 나서 실천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오히려 우리의 마음가짐이 행동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행동에서 그 마음이 생겨난다. 어떤 마음가짐이 되느냐 하는 것은 행동의 성격에 죄우된다. 따라서 어렸을 때부터 계속 이렇게 습관을 들였는지, 혹은 저렇게 습관을 들였는지는 결코 사소한 차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대단히 큰 차이, 아니 사실 모든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왜 요즘 기분이 우울하지?'
'왜 건강이 나빠졌을까?'

그런데 이것들은 실천적인 솔루션을 묻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뭔지 몰라서 묻는 질문에 해당한다.


숲에서 내려다보는 방식만으로는 부족하다. 땅으로 내려와서 개미를 살펴보고 난 후 다시 숲 전체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공허한 솔루션을 외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구호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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