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kinson disease

의식을 사용하기

수승화강지촌 2024. 6. 26. 0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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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사용하기


...;) 우리가 나로부터 자유로워져서 "의식을 초월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자판의 사용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분명하게  의식을 사용하게 되기 까지는 무지와 자아, 자유인에 이르는 과정을 거칩니다.

"오직 모를 뿐"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생각으로부터도 자유롭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자유의식을 맛본다는 것은 "모른다"를 느끼거나 순수의식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모르는 상태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흥미롭게도 자유로이 의식을 쓸 수 있는 "모르는 상태"에 있을 때는 도리어 "모른다는 느낌"이 없습니다.

"모른다"를 '느끼'거나 "텅빈 상태를 느낀다"는 것은 아직 二元적인 자리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아직도 '뭔가'를 "느끼는" 상태이기 때문이지요.

당신이 내적인  무언가를  "알거나 느끼기" 위해서는 느끼는 주체와 느껴지는 대상으로나뉘어 있어야 합니다.   또는 그 대상의 "고정된 흔적"이 필요합니다. 즉 아무리 짧은 순간이라도 그것이 "지나간 과거"가 되어야 합니다.

분열되지 않은 "지금 이 순간"은 결코 "알거나 느낄 수" 없습니다.

예를들어
지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떤 느낌이 있는지 "보십시오" 만일 외로움이 느껴진다면 당신은 그 외로움을 사진찍듯이 형태지어 붙잡아놓고  "느끼거나" "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치 않다면 그것을 '외로움'이라고 느껴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죽은 과거입니다. 그것이 사진과 같이 변함없고 고정되서 계속 "같은 느낌"을 준다면 말입니다.  과거만이 "같은 느낌"을 지닙니다. 그리고 고정된 "같은 느낌"을 지니지 않는 것은 우리가 알거나 느낄 수 없습니다.  무언가  보이고 느껴진다면  그것은  마음의 사진기로 찍어 고정화시킨 과거의 느낌일 뿐입니다. 우리가 안다고 느끼는 모든 것은 이와 같습니다.

"안다"라고 느낄 때 우리는 이미 끊임없이 과거를 되씹는 만추동물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것에 깨어있지만 그 어떤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는 의식인 "깨어있기"가 되면 이제 비로소 "지금"에 현존하게 되며 곧이어 "모르는" 상태로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의식과 관련하여 우리에게는 세 가지 상태가 존재합니다.
즉 어린 아이 같은 성태, 자아가 확립된 어른의 상태, 자아를 사용하는 자유인의 상태가 그것입니다.

이 세가지  상태를 컴퓨터 자판에 비유하자면,

"어린아이 의식"은 자판을 치는 법을 배우지 못해, 자판 위에서 무엇을 두드릴지 몰라 멍하게 떠 있는 상태입니다. 그는 어떤 자판에도 익숙하지 않으므로 하나의 자판에 끌리거나 밀쳐내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를 쳐야하는 상황이 오면 온통 혼돈에  빠지며 헤맵니다.  다만 자신이 "헤멘다는 의식"이 없을 뿐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癡心이라 합니다.

반면 "자아가 확립된 이"는 어떤 한두 가지 자판에 손을 대고 있으며 전체 자판을 대강 익히기는 했으나 손이 늘 "어딘가에 머무르고"있습니다.  우리가 자판을 칠 때 "제자리"란 아무 자판에도 중요점을 두고 있지 않지만 언제든 어느 자판이든 칠 수 있는 "자리"를 말합니다.  그런데 자아는 아직 그런 제자리에 가 있지 못하며 몇 가지 "익숙한 자리"에 습관적으로 끌리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에 저항합니다.

그래서 그와 다른 새로운 상황이 오면  혼란에  빠져  끌림과  밀침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는 상태입니다. 이것 또한 불교의 貪心과 嗔心에 상응됩니다.

탐심은 끌리는 마음에서, 진심은 저항하고 밀져내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자유인은 어떤 자판에도 끌림이나 밀침이 없으며  항상 제자리에 떠 있습니다. 이렇게 떠있는 것은 "어린아이 의식"이 몰라서 멍하게 떠있는 것과 유사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 천국을 간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인은 이렇게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지 어린아이는 아닙니다.  어쨌든 자유인의 의식은 자판에ㆍ 익숙한 사람이 중간줄의 공중에  손가락을 위치시키고 있는 것과 같아, 그의 다섯손가락은 언제나  "현재"에 반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하나의 자판을 치고는 다시 원위치에 와있기에 다를 자판을  빠르게 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자판에 닿는 것"을 "어떤 것을 의식하는것"이라고 비유해보면,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항상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은 상태"에 있습니다.  어떤 자판에도 닿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래서 "모르는 상태"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판에 서툰 사람은 하나에 자판을 치면 손가락이 지금 친 그 자판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다가 다른 자판을  쳐야할 때가 되면 다시 그ㅈ손가락을 움직여 다른 자판으로 가져갑니다(**_안거나,걷거나  등등)

서툰 사람은 항상 어떤 자판에 손가락이 머물러 있으므로 늘 무언가를 의식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닿아있는 것에 머물고, 애착하며 그렇치 않은 것에 저항합니다.  

필요할 때만 의식하고는 다시 아무 의식 없는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어떤 것에도 반응할 수 있다는 면에서 늘 "깨어있습니다".

•  안다는 느낌도 없다.
• 텅빈 상태
• 안다는 느낌도, 모른다는 느낌도 없습니다.
• 단지 깨어있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상태
• 언제든지 아는 상태를 사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
• 지혜의 마음입니다.


※ 우리가 언제든 아무것도 모른다, 또는 아무것도 없다는 느낌이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면, 또 언제든 거기서 필요에 따라  무언가를 의식하거나 아는 상태로 나올 수 있다면 의식의 "제자리"를 보고 그것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제자리를 본 사람은 더 이상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제자리"에 있습니다.

제 자리를 안 이는 이제부터 사용하는 삶이 펼쳐집니다.  그는 모든 것을 삼용하며 살게 됩니다.

(이 글은 "의식에 대 해부"~ 越因지음님의 글중에서, 편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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