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자유란, "벗어나는 자유"가 아니라 "걸리는 자유"입니다. 상황과 조건을 부정하고 벗어나는 자유가 아니라, 그 어떤 상황과 조건이든 수긍이 되고 받아들여지는 자유입니다.
'나'라는 작은 중심은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이 "전체"라는 열림은 결코 구속될 수 없습니다. 전체로 열릴 적에야 비로소 구속으로 보였던 그 모든 상황과 조건들이 진실함으로, 그리고 온전함으로 펼쳐집니다.
그러나 "나"에 갇혀 사는 이상 결코 모릅니다. 전체로 펼쳐질 때어야만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입니다.
그럴 적에 스스로 걸려들고, 자유로이 구속될 수 있습니다. 이 진실함과 온전함을 결코 벗어날 수 있는 게 아님이 명백해지기 때문입니다.
이 전체 안에서 그 모든 자유와 구속이 반대의 의미가 아니라, 진실한 드러남이 될 적에 진정한 자유입니다.
그러할 때에야 우리는 그 모든 상황과 조건에 구속되는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고, 자유로이 그 모든 상황과 조건으로 구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ㅡ,
나는 자유를 원한다.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이는 "나"로써 구속되어 있음을 동시에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유를 원하는 것도 "나"이고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구속된 것도 "나"입니다.
ᆢㆍ우리가 서로 반대되는 의미라고 믿고 있고, 그렇게 따르고 있는 구속과 자유의 근본 원인이 바로 "나"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나"라는 것이 해체된다면 어찌될까요? 구속과 자유는 나에 기생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관념입니다. 이 "나"라는 기둥이 허물어진다면 구속과 자유는 바람처럼 되고야 맙니다. 붙잡고 세울 수 있는 실체가 없는 흐름입니다.
애초부터 문제는 자유냐 순종이냐 이런 것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분명합니다. 사람은 진리를 알려고 하고 소유하려고 합니다. 모든 게 이 "나" 때문입니다.
마음에
꽉 붙들어 절대 잊어버리지 말라. 생각이 나아가고 생각이 다해, 생각없는 곳에 이르면 6문에서 항상 지금의 광명이 빛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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