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지 않는 영혼 8- 중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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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미 ・ 2020. 12. 24. 12:21
상처 받지 않는 영혼
저자마이클 A. 싱어출판라이팅하우스발매2014.05.08.
[상처받지 않는 영혼] 책 내용을 발췌했습니다./ 몇 번씩 읽기 위해 타인의 글을 여기에 옮겨 놓은 글임을 밝힘니다
18. 중도의 비밀
도는 어디에 있는가? 도는 그 중간에 있다. 그곳은 어느쪽으로도 미는 힘이 없는 곳이다. 음식이든, 인간관계든, 섹스든, 돈이든, 행위든, 무위든, 무엇이 됐든 간에 진동추는 그 사이의 균형점에 이를 수 있다. 모든 것은 음양을 품고 있다. 도란 이 두 힘이 고요히 균형을 이루는 곳이다. 그리고 도를 벗어나지 않는 한 그 힘들은 평화로운 조화 속에 머물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고정되고 정체되어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보다 훨씬 더 역동적인 것임을 당신은 곧 알게 될 것이다.
우선 당신은 모든 것이 음과 양을 지니고 있고, 또 고유한 균형점을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균형점들이 서로 어우러져서 조화될 때 도를 이룬다. 이 전체적 균형은 시공간 속을 움직이면서 평형 상태를 유지한다. 그것의 힘은 엄청나다.
당신이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가려고 한다고 하자. 그런데 그리로 곧장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갈지라로 흔들리면서 간다. 그러면 시간도 더 걸리고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달리 말해서 흔들리면서 길을 가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 효율을 높이려면 당신의 모든 에너지를 길 위에만 모야야 한다. 이렇게 하면 옆으로 흔들리는 데 허비된 에너지가 중심으로 모아질 것이다. 이 집중된 에너지는 주어진 일을 훨씬 더 효울적으로 해내는 데 쓰일 수있다. 이것이 도의 힘이다. 양극단 사이를 흔들기를 멈추면 당신은 자신이 상상보다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지니고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다른 사람이 한 시간 걸려서 하는 일은 당신은 몇 분 만에 할 수 있을 것이다.
극단으로 치우치면 치우칠수록 진척은 줄어든다. 당신을 도로 데려다 줄 에너지가 없다. 진동추가 바깥 쪽으로 흔들리는 것을 어떻게 멈출 수 있을 까? 정말 놀랍게도, 그것은 그냥 내버려 두면 그렇게 된다. 당신이 극단에 에너지를 공급해 주지 않는 이상 진동추는 계속 흔들릴 수가 없다. 극단을 그냥 내버려둬라. 거기에 끼어들지 마라. 그러면 진동추는 저절로 중심에 멈 출 것이다. 그것이 중심에 가까워질 수록 당신은 에너지로 충만해질 것이다.
중심을 잡고 극단 속으로 끼어들지 않기로 하면 당신은 도를 깨우치게 될 것이다. 삶 속에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에너지는 스스로 길을 찾아 그 중심으로 가서, 거기에 고요히 머문다. 도는 비어 있다. 태풍의 눈과 마찬가지로, 비어있음이야말로 그 힘이다. 주변의 모든 것이 소용돌이치지만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다. 삶의 소용돌이는 그 중심으로부터 에너지를 가져오고 중심은 삶의 소용돌이로부터 에너지를 가져온다. 날씨에서나 자연에서나 삶의 모든 측면에서나 모든 법칙은 동일하다.
당신이 운전을 하고 있는데 누가 끼어들면 중심으로부터 벗어나는 에너지를 느낀다. 당신은 실제로 그것을 가슴 속에서 느낀다. 그것을 놓아 보내면 당신은 중심으로 다시 돌아온다. 당신은 극단을 쫓지 않는다. 그러면 에너지도 현재의 순간으로 돌아온다.
도 안에서 움직일 때, 당신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삶은 극도로 단순 해진다. 도 안에서는 삶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쉽게 알 수있다. 그것은 바로 당신 눈 앞에서 펼쳐진다.
돛배는 아주 적절한 비유인데, 돛 배는 다양한 힘들이 상호작용하기 때문이다. 바람과 돛과 키와 돛을 맨 밧줄의 탄력이 매우 복잡하게 서로 얽힌다. 바람이 부는 데 돛을 너무 느슨하게 달면 어떻게 도리까? 아무런 소용이 없다. 너무 팽팽하게 당기면 어떻게 될까? 배가 뒤집어 진다. 바람을 제대로 받으려면 아주 적당하게 당겨줘야 한다. 당신은 완벽한 균형의 느낌과 함께 배를 몰아간다. 그때 바람이 바뀌고, 당신은 또 거기에 맞추어 적응한다. 당신과 바람과 돛과 물이 하나다. 모든 흐름이 조화 상태에 있다. 그중 하나의 힘이 바뀌면 다른 힘들도 동시에 함께 바뀐다. 이것이 도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의 의미이다. 항해의 도에서 균형점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그것은 역동적 평형이다.
균형 속에서 일할 수 있게 되면 당신은 삶 속을 자유롭게 미끄러져 갈 수 있다. 도에 이르면 애씀 없는 행위가 일어난다. 삶이 일어나고, 당신이 거기에 있다. 당신이 중심에 앉아 있는 동안 힘이 스스로를 돌본다. 그것이 도이다. 그것은 삶의 모든 것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자리이다. 그것을 만져볼 수는 없지만 그것과 하나가 될 수는 있다.
19. 사랑 가득한 신의 눈을 보라
우리의 깊은 내면에는 신성과의 직접적인 연결점이 있다. 개인적 자아를 초월한 우리 존재이 한 부분이 있다. 당신은 마음이나 몸 대신 그 부분과 하나가 되기를 의식적으로 택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자연스러운 변신이 당신 안에서 일어나기 시작한다.
당신은 삶에서 분노와 회한과 부정적인 생각들에 깊이 사로잡혔던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기분이지를 당신은 안다. 그 부분을 지나서 성장하면 당신은 그 긴장과 불안의 느낌으로부터 떠나온다. 당신이 앉은 내부의 장소로부터 그 낮은 진동수의 구름이 점점 멀어져 갈 것이다. 낮은 수준의 진동을 풀어놓으면 당신은 저절로 그것이 자신이라거나 당신이 그것과 상관이 있다는 생각을 그치게 된다. 그것을 놓아 보내면 당신의 영sprit 이 떠오른다.
떠오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떠오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그것은 자신의 내부로 더욱 깊이 가라앉는 경험이다.
떠오른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당신은 분노와 두려움과 자의식을 전처럼 많이 느끼지 않는다. 당신은 내면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더 깊은 진동으로 떠오른다.
당신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존재의 육체적, 심리적 부분과 관계를 줄여 가면, 당신은 순수한 에너지의 흐름과 더욱 깊이 동화 되기 시작한다.
형상보다 영과 더 깊이 동화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이제 당신은 사랑을 느끼며 걸어다닌다. 당신의 배경이 사랑이다. 당신의 배경이 열림과 아름다움과 음미이다. 그것은 언제나 좋은 느낌, 언제나 고양된 느낌이다. 그것은 언제나 열려 있고 가벼운 느낌이다. 당신은 자연히 자신의 영적인 부분에 점점 더 중심을 두기 시작한다. 영을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아닌 것들을 다 놓아 보냄으로써 그렇게 한다. 개인적 자아는 놓아 보내야 한다. 그것을 놓으면 당신은 내면으로 들어간다. 진동수가 높아지고 느끼는 사랑과 가벼움의 정도가 높아진다. 당신은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당신은 갈수록 빠른 속도로 계속 발전해 간다. 영이 당신의 상태가 된다.
어느날 '나'라는 느낌이 더 이상 없다. 사랑과 빛을 경험하고 있는 분리된 느낌이 없어졌다. 오직 궁극적으로 확대된 참나가 사랑과 빛 속으로 녹아드는 느낌만이 있었다. 마치 한 방물의 물이 대양 속으로 합쳐지듯이.
자신을 하나의 개인으로 인식하는 의식의 물방울이 충분히 깊숙이 들어가면 그것은 대양 속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된다. 아트만(영혼)이 파람 아트만(지고의 영혼)속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개인의 의식이 우주적 일체성 속으로 떨어진다. 그것이 끝이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다' 그들은 신의 우주적 일체성 속에서 하나가 되었고, 그 안에는 차별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개인의 영인 의식의 물방울은 태양으로부터 비쳐오는 한 줄기의 빛살과도 같다. 각각의 빛살은 태양과 실로 다름없다. 의식이 자신을 빛살과 동일시하기를 그치면 자신이 태양임을 깨닫는다. 존재들은 그런 상태 속으로 녹아든다.
'이들이 모두 하나 되게 하소서. 어비지, 당신은 내 안에 있고 나는 당신 안에 있듯이 이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이기를 .... 나는 이들 안에 있고 당신은 내 안에 있으니 이들도 온전히 하나 되기를 ....'
신을 향한 이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가는 동안에 어떤 변화를 겪게 될까? 당신은 더 이상 분별과 심판을 하지 않는다. 존경과 사랑과 소중히 여기는 태도가 있다.
신성의 경지에서는 창조계가 어떻게 보일까? 분별과 심판은 오래 전에 사라졌다. 구경할 아름다운 것들만 많다. 그들은 이렇게 느낀다. '이제 나는 모든 꽃들을 동시에 볼 수 있다. 이제 난 나의 모든 아이들과 나의 다채로운 분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경험할 수 있다. 이제 나는 내 창조물들의 모든 다양한 표현과 행위에 대해 더 많은 사랑과 연민과 이해와 찬탄을 느낀다.' 이것이 성자들이 느끼는 것이다. 진정한 성자는 신과 함께 머문다.
신은 심판하지 않는 다는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어떨까? 신은 사랑이라면? 진정한 사랑은 심판하지 않는 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알 고 있다. 사랑은 대상 속에서 오로지 아름다움밖에 보지 않는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 본적이 있다면 진정한 사랑이 무엇을 뜻하는 지를 알 것이다. 그것은 상대방을 나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뜻한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하면 당신의 사랑은 그의 인간적 면모 너머를 바라본다. 당신의 사랑은 과거의 잘못과 현재의 결점을 포함해서 그의 온 존재를 보듬어 안는다. 그것은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같다.
신은 사랑이고 당신이 직접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을 통해 무엇을 주기 위해 신이 손을 뻗칠 때, 주고 싶지 않은 것은 없다. 당신은 마지막 숨결을 내주고도 그것을 기억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무엇이든.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이다. 이처럼 깊은 사랑을 느낄 때, 당신은 그것이 당신보다 훨씬 더 큰 무엇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느낀다. 그것은 초월적인 사랑이다. 그것은 거룩하고 조건없고 이기심 없는 사랑이다.
신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고 싶은가? 그가 온갖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태양을 보라. 신성의 본질은 빛이요. 사랑이요. 연민이요. 가호요. 베풂이기에. 그것은 태양과 같다.
멋진 것은, 당신도 이 활홀경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이 환희를 경험하기 시작할 때, 그것이 신의 본성을 이해하게 되는 때이다.
당신은 사랑 깊은 신을 가졌다. 사실은, 사랑 자체가 곧 신이다. 그리고 사랑은 사랑 밖에 못 한다. 당신의 신은 환희 속에 있으며, 당신은 그것을 말릴수 없다. 그리고 신이 환희 속에 있다면 그가당신을 바라 볼때, 그는 과연 무엇을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