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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紫色) 이야기
카메라나 폰으로 꽃사진을 찍을 때 유독 제 색깔이 잘 나오지 않은 것이 보라색이다. 보라색이라고 찍었는데 엉뚱하게도 파랑으로 나오고, 파랑색이라고 찍었는데 보라색으로 바뀌어 있다. 왜 그럴까?
빛이 렌즈를 거치면서 굴절되는 것을 카메라의 센서가 감지해서 색깔을 표현하는데, 보라색의 경우는 가시광선 중에서 파장이 가장 짧아 굴절률이 커서 센서가 헷갈려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인위적으로 빨강과 파랑을 섞어 만든 보라색은 그런대로 찍히는데, 자연이 만들어 낸 오리지날 보라색은 카메라가 잘 표현을 못한다는 사실이다. 다시말해 보라색의 물체를 찍으면 제대로 나오지만, 보라색의 꽃을 찍으면 색깔이 왜곡된다. 이는 색깔을 만들어 내는 솜씨가 인간보다는 자연이 더 정교하다는 걸 반증한다고 볼 수 있다.
한가지 더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색깔에 대한 표현력에 관한 한 세계최고의 현란한 어휘 구사를 하는 한민족이지만 유독 보라색에 대해서는 융통성이 작동을 멈춘다. "보라스럼하다, 보라튀튀하다, 보라끼리하다" 등의 표현은 없다.
이유인 즉슨, "오방색(五方色)" 사상 때문이다. 한민족의 정서에는 가장 기본적인 색이 다섯가지가 있다. 노랑-빨강-파랑-하양-검정이 그것이다. 음양오행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 맥은 전통 의복과 음식 등 민족의 일상 전반에 녹아있다.
이들 오방색들은 각각의 색들을 표현하는 어휘들이 우리말에는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하다. 그렇지만 보라색은 그렇지 못하다. 오방색에서 벗어나 있는 "五方間色"이기 때문에 표현이 단조로울 수 밖에 없다. 초록도 그러하고, 분홍도 그러하다.
사실 보라색이 대중화된 것은 19세기에 들어서 염료용 화학물질이 발명되면서부터이다. 그 이전에는 자연소재를 사용해 염료를 만들었는데, 가장 어려운 것이 보라색이었다고 한다.
서양에서 주로 사용했던 원료는 바다달팽인데, 1만마리 이상의 체액을 추출해야 손수건 한 장 정도를 물들일 수가 있었다. 그래서 왕이나 귀족들이 아니면 엄두도 낼 수 없는 귀한 색이었고, 신분을 상징하는 색이었다.
동양에서도 보라색(紫)은 높은 신분을 상징하기는 했지만 황제나 왕을 상징하는 색은 오행의 중심색인 노랑색(黃)이었다. 십여년전 공전의 시청률을 기록했던 TV사극 선덕여왕에서 풍운여걸 "미실"의 의상도 주로 보라색으로 나온다. 인물의 비범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사극에서는 보기드문 컬러를 채택했겠지만 삼국시대 당시에도 이미 보라색 의복이 있었다는 고증은 많이 있다.
이는 서양과는 달리 흔하게 구할 수 있는 식물인 #지치 뿌리를 주원료로 염료를 만들었기 때문에 대량생산도 가능했음을 시사한다. 사질토양에서 잘자라는 지치는 주변의 흙까지도 보라색으로 물들일 정도로 뿌리에 자색의 성분이 많다.
아무튼 보라색은 태생 자체가 두가지 색이 합쳐져 만들어 진 만큼, 그 속성도 양면성을 띤다. 희망과 자긍심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절망과 고독에 빠뜨리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또한 치유를 상징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임상실험 결과 심신이 쇠약해지면 보라색에 더 끌리게 된다고 한다. 그리고 개성파 예술인이나 AB혈액형인 사람들이 특히 좋아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까칠한" 사람들의 색깔이라고 할 수 있다고 하겠다.
오방색
지치의 잎과 뿌리 그리고 꽃
신라 귀족의 옷(자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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