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대상'이 동시에 발생할 때
그 중 '나'라는 느낌을 일으키는 구성 성분의 하나가 '주체감'입니다.
또 하나의 성분인 '내용'이 청사진이라면,
'주체감'은 어떤 '주인'의 느낌을 만들어 냅니다.
이것은 注意가 많이 모이고 쌓여 흘러갈 '주의의 원천(source)'
역할을 하는데,
그래서 '주체'는 내외적으로 주의의 시작점이 되고,
'대상'은 주의의 도착점이 됩니다.
예를 들어 저 밖에 있는 나무를 보면
이 몸에 있는 '내'가 대상인 저 '나무'를 본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때 주의는 이 몸 쪽에서 저 나무 쪽으로 흐릅니다.
즉 이 몸이 주의의 시작점, 나무가 주의의 도착점이 되어
'나와 대상'을 이루게 됩니다.
또 내면을 살펴봐도
'누군가'가 있는 쪽으로 '주의'가 흐릅니다.
아 두 경우 모두
'이 쪽'은 주체로 느껴지고
'저 쪽'은 대상으로느껴지는데,
이는 '주의'가 시작하는 쪽이 주체로,
주의가 도착하는 쪽이 '대상'으로
느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경험할 수 있는 최후의 것으로
주체감의 구성 성분
'주체감'에서 '나/대상' 감이라는 느낌이 희미해지고 남는
최종적인 느낌이 존재감입니다.
"있음"이라고 불립니다.
즉 내면탐구의 과정에서
'주체감'을 탐구 대상으로 삼게 되면
탐구하려는 의도는,
'주체감'을 향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탐구하려는
의도적 '주의'와 탐구대상인 '주체감'이 모두 그 핵심에 있어서는
'주의'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관찰 초기에는 둘이 서로 다르게 존재하고 있는 듯
여겨지나,
오래지 않아 그 둘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사라지며
오직 하나 남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존재감입니다.
마음의 '세계'는 경계가 있는 세계인데,
존재감 속에서는 경계가 사라지니 마음의 모든 구분은
흔적 없이 증발해버리고 말게 됩니다.
世上은 그림자 이전 - 世界는 그림자의 세계
그림자의 세계 / 이것을 통찰하고 이루고 있는 관성을 다루게 되면
이제 관성을 넘어가게 됩니다.
세계란 마음이 나눠놓은 현상계를 말합니다.
여기서 세계와 세상을 구분합니다.
불이(不二)의 우주인 있는 그대로의 '세상'은 아무런 경계와 분할이 없지만,
마음에 그것이 비춰지면 이제 경게가 생기고 국경이 그려지며,
그 경계를 통해 서로 간에 만남과 헤어짐, 생로병사, 갈등과 행복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보는 世界란 不二의 世上이 마음에 비춰진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의식'한다고 할때는,
비로 그렇게 경계지어진 그림자 '세계'속에서
의식하여 울고 웃고 하는 것이며, 그래서 환상 속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나누어지지 않은 세상은
땅와 같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나누어 놓은 세계는 한국과 미국, 일본처럼 땅에다 금을 긋고
'이름'을 붙여놓은 지도와 같은 땅일 뿐이지요.
그러나 사실 땅에는 그 어떤 나라도 없습니다. 그저 땅일 뿐이지요.
이렇게 있는 그대로의 땅인 世上
그 자체가 아닌,
人間(世)이 경계지어 놓은(界) 곳이 바로 세계인 것입니다.
世上 : 그림자 이전 ...!!!
세상은 아무런 분별이 없는 '하나'라고도 이름 붙일 수 없는
질서와 평등, 조화인 우주 '그것'입니다.
위의 용어 설명에서 감정과 그 하부구조를 그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感情은 내가 '믿는(信) 생각(念)' 과 그에 부딪치는 상황이나
다른 사람의 생각이 만나 일어납니다.
그리고 네가 믿는 생각은 '믿음'이라는 에너지와
생각이라는 내용으로 이루어지며,
이때 '생각'은 '나'와 '대상'으로 구성되며
그중 '나'에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나' 주체감과 경험의 ㅡ 흔적들로 이루어지고,
'주체감'은 투명한 '존재감'과
나와 대상을 나누는 나/대상감에서
'나'의 느낌이 합하여 이루어집니다.
감정(感情) .... 신념과 부딪치는 상황
.정서(情緖) ....정이 풀려져 나옴, 일상의 분위기
정(情)....감지들 간의 끌림과 밀침
감지(感知).... 경험의 흔적들
우리가 경험하는 이 ㅣ 世界ㅣ는
無意識的으로 쌓인 것들이 지배하는
慣性의 世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