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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플라시보다 : 조 디스펜자(1)
조 디스펜자는 그의 다른 팬들처럼 나 역시도 이번에는 또 어떤 도발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을까 늘 궁금해 하는 사람이다. 조는 분명한 과학적 증거들을 가지고 우리의 영감을 자극하는 통찰들을 끌어내면서 '이미 알고 있는 것'(旣知)의 경계를 확장하고 가능성의 한계를 넓힌다. 웬만한 과학자들보다 덜 진지하게 과학을 탐구하는 그의 이 매력적인 책에서도 후성(後性) 유전학, 신경 가소성, 정신신경 면역학 등의 최근 성과들을 바탕으로 논리적인 결론을 이끌어내고 있다.
그 결론이 흥미진진하다. 우리의 생각, 감정, 의도와 우리가 경험하는 초월적 상태들이 우리의 뇌와 몸의 양상을 결정하는 것이 그 결론이다. 이 책으로 당신도 이 결론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고, 새로운 몸과 새로운 삶을 당신 스스로 창조하게 될 것이다.
이 결론은 형이상학적인 명제가 아니다. 조는 모든 연결고리들을 인과성의 사슬 안에 두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하나의 생각이 원이 되어 실제로 줄기세포 수가 증가한다거나 혈류 속을 순환하는 면역성 부여 단백질 분자 수가 증가한다거나 하는 생물학적 결과가 따른다는 것이다.
PART 1. INFORMATION
정보
02. 플라시보의 간략한 역사
첫 번째 도약
절박한 상황이 절박한 행동을 부른다는 말이 있다. 하버드 출신의 미국인 외과의사 헨리 비처 Henry Beecher 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장에 있을 때, 모르핀 공급이 부족했다. 전쟁 말미라 야전 병원에 모르핀 공급이 부족한 때였으므로 드문 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필 그때 비처는 심하게 부상당한 병사를 한 명 수술해야 했다. 진통제 없이 수술했다가는 심장 쇼크로 죽을 수도 있었는데, 그럼 다음에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이어질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망설일 새도 없이 간호사 한 명이 주사기에 식염제를 채우고 마치 모르핀인 양 병사에게 주입했다. 병사는 그 즉시 안정을 찾았다. 소금물 주사를 한 방 맞았을 뿐인데 실제 모르핀을 맞은 것처럼 반응한 것이다. 비처는 수술을 시작했고, 살을 째고 필요한 조치를 한 다음 다시 꿰매는 일을 모두 마취제 없이 끝냈다. 병사는 약간의 통증을 느꼈지만 쇼크를 받지는 않았다. 비처는 어떻게 소금물이 모르핀을 대신할 수 있는지 스스로도 의아스러웠다.
그때 부터 야전 병원에 모르핀이 떨어질 때면 비처는 모르핀인 양 식염수를 투여했다. 그러면서 비처는 점점 플라시보의 힘을 확신하게 되었고, 전쟁이 끝난 뒤 미국으로 돌아와 자신이 경험한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1955년, 비처는 <<미국의학협회저널 Journal of the Americal Medical Association>>에 15개 연구에 대한 임상 심리를 게재해 역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이 논문에서 비처는 플라시보의 커다란 의미를 밝힌 것은 물론 피험자들에게 실제 약과 위약을 무작위로 배당하는, 의학 연구의 새로운 모델도 제시했다. 이 모델은 현재 무작위 비교 실험 randomized, controlled trials(RCT)이라고 불리는데 강력한 플라시보 효과의 결과를 왜곡 없이 도출하는 장점이 있다.
1970년대 말 획기적인 한 연구에서 플라시보가 진짜 약처럼 엔드로핀(우리 몸이 만들어내는 천연 진통제) 분출을 촉발할 수 있음이 처음으로 확인되었다. 이 연구에서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 대학의 존 레빈 John Levin 박사는 막 사랑니를 제거한 40명의 치과 환자들에게 진통제 대신 플라시보를 주었다. 정말로 고통을 없애줄 진통제를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환자들은, 이제는 놀랍지도 않게, 통증이 완화되었다고 보고했다.
이 연구는 피험자들이 마음속으로만 통증 완화를 경험한 것이 아니라 실제 몸으로도 경험했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점에서 플라시보 연구역사에서 하나의 중대한 사건이 되었다. 그 환자들은 몸과 마음을 아우르는 존재 상태 전반에서 통증 완화를 경험했던 것이다.
인간의 몸이 그렇게 진통제를 자체 제조하면서 스스로를 위한 약국처럼 기능한다면, 우리 안의 저장되어 있는, 치유에 좋은 화학 물질들을 무한대로 혼합해서 자체 제작한 천역약들을 필요할 때마다 가져다 쓸 수 있지 않을까?
1970년대에 심리학 박사 로버트 아버 Rovert Ader는 또 다른 연구를 통해 '조건화 conditioning'라는 흥미로운 요소를 플라시보 논의에 추가했다. 유명한 러시아인 생리학자 이반 파블로브 Ivan Pavlov에 의해 유명해진 이 조건화 개념은 두 가지 일의 연결을 전제로 한다. 파블로프가 먹이를 주기에 앞서 종을 울리기 시작한 후로 종소리와 음식을 연결시키게 된 파블로프의 개들처럼 말이다. 언제가부터 그 개들은 종소리를 들을 때마다 먹이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자동으로 침을 흘리도록 조건화되었다. 조건화의 결과로 개들의 몸은 침을 흘리게 만든 애초의 자극(음식)이 없을 때조차 환경 속 새로운 자극(이 경우 종소리)에 침을 흘리며 생리적으로 반응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조건화된 반응에서는, 몸 속에 저장되어 있는 무의식적인 프로그램이 의식적 마음을 능가해 상황을 관장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방식으로 몸이 실제로 마음(무의식)이 되는 것이다. 의식적인 생각이 더 이상 통제권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더 박사는 그런 조건화된 반응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알아보고자 연구를 시작했다. 먼저 실험용 쥐들에게 위통을 야기하는 시클로포스파미드라는 약물을 탄 달콤한 사카린 물을 먹여보았다. 쥐들이 그 물의 달콤한 맛과 위장의 아픔을 연결시키는 조건화를 끝내고 나면 곧 시클로포스파미드를 탄 물을 거부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더 박사가 알고 싶었던 것은 쥐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거부하느냐였다.
그런데 시클로포스파미드가 면역 체계도 약화시킨다는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한 아더 박사는,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감염으로 쥐들이 갑자기 죽어나가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아더 박사는 연구 장치를 바꾸고 살아남은 쥐들에게 계속 사카린 물을 (점안기로 강제로) 먹였다. 다만 이번에는 스클로포스파미드를 섞지 않았다. 그런데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약을 더 이상 주입하지 않았음에도 쥐들은 계속 감염으로 죽어나갔다. (처음부터 단물만 받아먹은 비교 그룹의 쥐들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쥐들이 단물의 맛과 면역력을 저하시키는 약의 효과를 연결시키는 조건화를 한번 만들고 나면 그 연결이 너무 강력해서 단지 단물을 마시는 것만으로 그 약이 만드는 생리학적 효과(신경 체계에 면역 체계를 억압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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