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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려 있기
음식을 태워서 내는 칼로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내부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 있다. 그것은 외부 에너지와 다르다. 당신 내부에 엄청난 에너지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 에너지는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어떤 순간이든지 그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다. 속으로부터 솟아나서 당신을 가득 채운다. 에너지가 충만할 때는 마치 세상이 다 내 것인 것 같다.
기운이 강하게 흐를 때는 실제로 그것이 물결처럼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깊은 속으로부터 절로 솟아나서 당신을 채우고 신선하게 재충전시킨다.
이런 에너지를 항상 느끼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당신이 그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가슴을 닫음으로써, 마음을 닫음으로써 막아버린다. 이것이 '막힌다'는 말의 뜻이다.
우리가 좌절했을 때 기운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가 되어 주는 중추들이 있다. 그것을 닫으면 에너지가 없다. 그것을 열면 에너지가 생긴다. 닫힘과 열림을 우리가 직관적으로 잘 느끼는 것은 가슴의 중추이다. 가슴은 에너지의 중추로서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요가 수행자들은 이 에너지를 차크라라고 부른다. 가슴의 중추를 닫아버리면 에너지가 들어오지 못한다. 에너지가 못들어 오면 어둠이 생긴다.
당신은 내부에 아름다운 에너지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 열려 있을 때 당신은 그것을 느낀다. 닫혀 있을 때는 것을 못느낀다. 이 에너지 흐름은 당신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온다.
고대 중국의 의학에서는 그것을 기라고 했고, 인도철학에서는 샥티라고 불렀다. 서양에서는 그것을 영이라고 한다, 영적 에너지란 당신의 가슴 속으로 순수한 사랑이 밀려올 때 경험하는 그것이다. 이 모든 높은 에너지가 내부로부터 생겨난다. 진정한 영적 가르침이란 이 에너지와, 그것이 열리게 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당신을 열려 있게 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닫지 않기만 하면 된다. 마음을 닫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모든 습관들과 마찬가지로 깰 수 있다. 열림과 닫힘이 심리적 요인에 좌우된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따라 마음을 열거나 닫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과거 경험의 인상은 아직도 우리 안에 남아 있어서, 현재의 여러가지 경험이 그것을 자극한다. 우리는 과거 경험에 의해 프로그램 되어 있어서 거기에 사사건건 반응하여 마음이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는 것이다.
가슴이 닫히기 시작할 때, 그저 이렇게 말하라 '아니야. 나는 닫지 않겠어. 힘을 빼겠어. 나는 이 상황이 일어나게 하고 거기에 함께 있겠어' 그 상황을 존중하고 받 들어라. 그것을 대면하라. 당신은 온 가슴과 영혼으로써 삶을 그저 포용할 것이다.
더 많이 열려 있을수록 더 많은 에너지 흐름이 일어난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들어와서 넘쳐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서 물결이 넘쳐 쏟아져 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손과 가슴과 다른 에너지 중추들로부터 흘러나가는 것은 실제로 느낄 수 있다.
모든 에너지 중추들이 열리고 엄청난 에너지가 당신에게서 흘러 나가기 시작한다. 그 에너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당신은 이 흐름으로써 그들에게 에너지를 주고, 그들은 당신에게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보다 더 크게 열리기를 당신이 기꺼이 원한다면, 그것은 멈춤이 없다. 당신은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빛의 근원이 된다.
** 가슴 정화하기
가슴은 하나의 에너지 중추, 곧 차크라이다. 그것은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에너지 중추 중 하나이며 우리 나날의 삶에 힘을 미친다. 말했듯이 에너지 중추란 우리 존재 내부의 한 장소로서 에너지가 집중되고 분배되어 흐르는 곳이다. 우리는 앞서 이 에너지의 흐름을 삭티, 혹은 영, 혼은 기라고 부르고 그것은 삶에서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늘 가슴의 에너지를 느끼고 산다. 가슴에서 사랑을 느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생각해보라 가슴에서 영감과 열의가 솟아나올 때 어떤 느낌인지를 생각해보라. 가슴에서 영감과 열의가 솟아나올 때 어떤 느낌인지를 생각해보라. 가슴에서 에너지가 솟아나서 확신에 차고 강해진 기분이 들 때,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생각해보라, 이 모두가 가슴이 에너지의 중추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외부세계에서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은 감각을 몸을 통해 들어와서 우리의 내면적 존재에 흔적을 남긴다. 그 사건의 경험은 약간 두려움이나 불안감, 아니면 약간의 사랑을 일으킬 수 있다. 세상이 당신을 거쳐 갈 때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느냐에 따라서 내면에서 일어나는 경험이 달라질 수 있다.
감각을 통해서 세상을 받아들일 때 사실 당신 존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에너지이다. 사물 자체가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사물은 밖에 남아 있고 당신의 감각이 그것을 마음과 가슴이 받들여 경험할 수 있는 에너지 패턴으로 바꿔준다. 과학은 감각의 이런 작용을 잘 설명해 준다. 눈은 세상을 내다보는 창문이 아니다. 눈은 세상의 전자기적 이미지를 당신 속을 보내 주는 카메라이다. 다른 모든 감각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이 세상을 감지해서 정보로 바꾸어 그 데이터를 신경 전기부호를 통해 보내면 그 인상이 마음에 의해 받아들여진다. 정말이지 감각은 전자 감지 장치이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에 들어오는 어떤 이미지가 말썽을 일으킨다면 당신은 그것을 가로막고, 지내 보내지 않는다. 이럴 때 그 에너지 패턴은 실제로 길이 막힌 채 당신 안에 남아 있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자신을 지나쳐 가는 순간들을 경험하고 그 다음 순간을, 또 그 다음 순간을 경험해 가는 것을 뜻한다. 온갖 다양한 경험들이 들어와서 당신을 지나갈 것이다.
그런 상태로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완전히 깨어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가슴과 마음은 지나가버린 사건에 대해 고정되어 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걸림이 생긴다. 사건이 지나가지 못하고 막혀 버린 것이다.
당신을 지나쳐 가지 못한 오래 묵은 에너지 패턴들은 마음의 전면으로 부터 밀려나와서 당신이 그것을 놓아 보낼 준비가 될 때까지 갇혀있다. 인도철학의 전통에서는 이 정리되지 못한 에너지 패턴을 삼스카라라고 부른다. 이것은 '인상' 혹은 '각인' 이란 뜻이다. 요가는 이것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힘이라고 가르친다.
정리되지 못하고 고정된 에너지 패턴으로서 결국은 그것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나선다.
이 맴도는 에너지의 덩어리는 가슴의 에너지 중추에 문자 그대로 저장된다. 살면서 당신이 끌어 모은 모든 삼스카라가 거기에 저장된다. 갓난 아이 적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당신을 지나가지 못한 모든 것들이 아직도 당신 안에 있다. 영적 가슴의 밸브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이 각인, 이 삼스카라이다. 이 엉긴 덩어리가 갈수록 커지면서 에너지의 흐름을 막고 있는 것이다.
가슴에 저장된 에너지는 실재하고 그것은 현재의 생각과 사건들의 흐름과 상호작용한다. 이 상호작용을 역학이 삼스카라로서 저장되어 있던 파동을 여러해가 지난 후에도 일깨워지게 한다.
자극을 받으면 삼스카라는 마치 꽃잎처럼 열리면서 저장된 에너지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맨 처음 사건이 일어났을 때 경험했던 기억이 갑자기 의식 속으로 밀여들어 온다. 그리하여 생각과 느낌과, 때로는 냄새와 그 밖의 감각까지도 삼스카라는 그 사건을 사진 찍듯 완전히 기록해서 저장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이 느꼈던 것, 생각했던 것 그 사건 주변에서 일어났던 모든 것들을 기록할 수 있다. 여러 해 후에 건드려지더라도 그것은 그 즉시 당신이 과거에 느꼈던 생생한 느낌을 경험하게 만든다. 육십이 되어도 다섯 살 때 느꼈던 불안감과 두려움을 실제로 느낄 수 있다,
집착도 삼스카라를 만들어낸다. 가슴 을 막는 두가지의 경험이 일어 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 에너지가 싫어서 밀어 내려고 하거나, 아니면 좋아해서 붙잡으려고 애쓴다. 어느 경우든 당신은 그것이 지나가도록 놔두지 않는다.
당신은 저항이나 집착으로 흐름을 막음으로써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음식을 태워서 내는 칼로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내부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이 있다. 그것은 외부 에너지와 다르다. 당신 내부에 엄청난 에너지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 에너지는 마음대로 쓸 수 있다.
어떤 순간이든지 그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다. 속으로부터 솟아나서 당신을 가득 채운다. 에너지가 충만할 때는 마치 세상이 다 내 것인 것 같다.
기운이 강하게 흐를 때는 실제로 그것이 물결처럼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깊은 속으로부터 절로 솟아나서 당신을 채우고 신선하게 재충전시킨다.
이런 에너지를 항상 느끼지 못하는 유일한 이유는 당신이 그것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가슴을 닫음으로써, 마음을 닫음으로써 막아버린다. 이것이 '막힌다'는 말의 뜻이다.
우리가 좌절했을 때 기운이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에너지가 흐르는 통로가 되어 주는 중추들이 있다. 그것을 닫으면 에너지가 없다. 그것을 열면 에너지가 생긴다. 닫힘과 열림을 우리가 직관적으로 잘 느끼는 것은 가슴의 중추이다. 가슴은 에너지의 중추로서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요가 수행자들은 이 에너지를 차크라라고 부른다. 가슴의 중추를 닫아버리면 에너지가 들어오지 못한다. 에너지가 못들어 오면 어둠이 생긴다.
당신은 내부에 아름다운 에너지의 원천을 가지고 있다. 열려 있을 때 당신은 그것을 느낀다. 닫혀 있을 때는 것을 못느낀다. 이 에너지 흐름은 당신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나온다.
고대 중국의 의학에서는 그것을 기라고 했고, 인도철학에서는 샥티라고 불렀다. 서양에서는 그것을 영이라고 한다, 영적 에너지란 당신의 가슴 속으로 순수한 사랑이 밀려올 때 경험하는 그것이다. 이 모든 높은 에너지가 내부로부터 생겨난다. 진정한 영적 가르침이란 이 에너지와, 그것이 열리게 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다.
당신을 열려 있게 하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닫지 않기만 하면 된다. 마음을 닫는 것은 하나의 습관이다. 그리고 그것은 다른 모든 습관들과 마찬가지로 깰 수 있다. 열림과 닫힘이 심리적 요인에 좌우된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에 따라 마음을 열거나 닫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다. 과거 경험의 인상은 아직도 우리 안에 남아 있어서, 현재의 여러가지 경험이 그것을 자극한다. 우리는 과거 경험에 의해 프로그램 되어 있어서 거기에 사사건건 반응하여 마음이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는 것이다.
가슴이 닫히기 시작할 때, 그저 이렇게 말하라 '아니야. 나는 닫지 않겠어. 힘을 빼겠어. 나는 이 상황이 일어나게 하고 거기에 함께 있겠어' 그 상황을 존중하고 받 들어라. 그것을 대면하라. 당신은 온 가슴과 영혼으로써 삶을 그저 포용할 것이다.
더 많이 열려 있을수록 더 많은 에너지 흐름이 일어난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들어와서 넘쳐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서 물결이 넘쳐 쏟아져 나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것이 손과 가슴과 다른 에너지 중추들로부터 흘러나가는 것은 실제로 느낄 수 있다.
모든 에너지 중추들이 열리고 엄청난 에너지가 당신에게서 흘러 나가기 시작한다. 그 에너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당신은 이 흐름으로써 그들에게 에너지를 주고, 그들은 당신에게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보다 더 크게 열리기를 당신이 기꺼이 원한다면, 그것은 멈춤이 없다. 당신은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빛의 근원이 된다.
** 가슴 정화하기
가슴은 하나의 에너지 중추, 곧 차크라이다. 그것은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에너지 중추 중 하나이며 우리 나날의 삶에 힘을 미친다. 말했듯이 에너지 중추란 우리 존재 내부의 한 장소로서 에너지가 집중되고 분배되어 흐르는 곳이다. 우리는 앞서 이 에너지의 흐름을 삭티, 혹은 영, 혼은 기라고 부르고 그것은 삶에서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는 늘 가슴의 에너지를 느끼고 산다. 가슴에서 사랑을 느끼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생각해보라 가슴에서 영감과 열의가 솟아나올 때 어떤 느낌인지를 생각해보라. 가슴에서 영감과 열의가 솟아나올 때 어떤 느낌인지를 생각해보라. 가슴에서 에너지가 솟아나서 확신에 차고 강해진 기분이 들 때, 그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생각해보라, 이 모두가 가슴이 에너지의 중추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외부세계에서 사건이 일어나면 그것은 감각을 몸을 통해 들어와서 우리의 내면적 존재에 흔적을 남긴다. 그 사건의 경험은 약간 두려움이나 불안감, 아니면 약간의 사랑을 일으킬 수 있다. 세상이 당신을 거쳐 갈 때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소화하느냐에 따라서 내면에서 일어나는 경험이 달라질 수 있다.
감각을 통해서 세상을 받아들일 때 사실 당신 존재 속으로 들어오는 것은 에너지이다. 사물 자체가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사물은 밖에 남아 있고 당신의 감각이 그것을 마음과 가슴이 받들여 경험할 수 있는 에너지 패턴으로 바꿔준다. 과학은 감각의 이런 작용을 잘 설명해 준다. 눈은 세상을 내다보는 창문이 아니다. 눈은 세상의 전자기적 이미지를 당신 속을 보내 주는 카메라이다. 다른 모든 감각들도 마찬가지이다. 그것들이 세상을 감지해서 정보로 바꾸어 그 데이터를 신경 전기부호를 통해 보내면 그 인상이 마음에 의해 받아들여진다. 정말이지 감각은 전자 감지 장치이다. 하지만 당신의 마음에 들어오는 어떤 이미지가 말썽을 일으킨다면 당신은 그것을 가로막고, 지내 보내지 않는다. 이럴 때 그 에너지 패턴은 실제로 길이 막힌 채 당신 안에 남아 있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자신을 지나쳐 가는 순간들을 경험하고 그 다음 순간을, 또 그 다음 순간을 경험해 가는 것을 뜻한다. 온갖 다양한 경험들이 들어와서 당신을 지나갈 것이다.
그런 상태로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완전히 깨어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가슴과 마음은 지나가버린 사건에 대해 고정되어 있다.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걸림이 생긴다. 사건이 지나가지 못하고 막혀 버린 것이다.
당신을 지나쳐 가지 못한 오래 묵은 에너지 패턴들은 마음의 전면으로 부터 밀려나와서 당신이 그것을 놓아 보낼 준비가 될 때까지 갇혀있다. 인도철학의 전통에서는 이 정리되지 못한 에너지 패턴을 삼스카라라고 부른다. 이것은 '인상' 혹은 '각인' 이란 뜻이다. 요가는 이것이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큰 힘이라고 가르친다.
정리되지 못하고 고정된 에너지 패턴으로서 결국은 그것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나선다.
이 맴도는 에너지의 덩어리는 가슴의 에너지 중추에 문자 그대로 저장된다. 살면서 당신이 끌어 모은 모든 삼스카라가 거기에 저장된다. 갓난 아이 적부터 지금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당신을 지나가지 못한 모든 것들이 아직도 당신 안에 있다. 영적 가슴의 밸브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이 각인, 이 삼스카라이다. 이 엉긴 덩어리가 갈수록 커지면서 에너지의 흐름을 막고 있는 것이다.
가슴에 저장된 에너지는 실재하고 그것은 현재의 생각과 사건들의 흐름과 상호작용한다. 이 상호작용을 역학이 삼스카라로서 저장되어 있던 파동을 여러해가 지난 후에도 일깨워지게 한다.
자극을 받으면 삼스카라는 마치 꽃잎처럼 열리면서 저장된 에너지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맨 처음 사건이 일어났을 때 경험했던 기억이 갑자기 의식 속으로 밀여들어 온다. 그리하여 생각과 느낌과, 때로는 냄새와 그 밖의 감각까지도 삼스카라는 그 사건을 사진 찍듯 완전히 기록해서 저장할 수 있다. 그것은 당신이 느꼈던 것, 생각했던 것 그 사건 주변에서 일어났던 모든 것들을 기록할 수 있다. 여러 해 후에 건드려지더라도 그것은 그 즉시 당신이 과거에 느꼈던 생생한 느낌을 경험하게 만든다. 육십이 되어도 다섯 살 때 느꼈던 불안감과 두려움을 실제로 느낄 수 있다,
집착도 삼스카라를 만들어낸다. 가슴 을 막는 두가지의 경험이 일어 날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 에너지가 싫어서 밀어 내려고 하거나, 아니면 좋아해서 붙잡으려고 애쓴다. 어느 경우든 당신은 그것이 지나가도록 놔두지 않는다.
당신은 저항이나 집착으로 흐름을 막음으로써 귀한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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