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 추 장 🌶
고추장에 관해서 특별한 체험이 있다.
뜻하지 않게 갈비뼈가 부러져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의 일이다. 한개도 아니고 열ㆍ자개씩이나 골절되어 꼼짝달싹을 못하고 아편으로 통증을 겨우 견디고 있었다. 그런데 혈압이 올라가고 혈당이 올라가 혼수지경에 이르니 보통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내도 어떻해서든지 날 살려보려고
정성을 다해 음식을 해왔지만 모두가
헛수고일 뿐이었다. 나 또한 집사람을
혼자 살게 만들면 천벌을 받겠기에 열심히 음식을 먹으려 애를 썼지만 구역질만 더 할 뿐이었다.
여행다닐 때 고추장 단지를 꾀차고 다니며 햄버거에 발라먹던 생각이 나서 고추장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고추장을 죽에 넣어 먹으니 신통하게 잘 넘어가는데 그 맛 또한 기가막혀 부글거리는 뱃속까지 편안해졌다. 덕분에 문병오는 사람마다 고추장 단지를 가져오는 바람에
고추장 벼락을 맞을 지경이 되었다.
그 후로는 고추장 단지가 내 식탁에 주인이 되었다.
고추장에 무슨 성분이 들어 있고 무슨
작용을 하는지는 몰라도 신통하기 짝이 없었다. 소태 같던 입맛이 꿀맛이요,
구역질도 잠잠해지고 느글거리던
뱃속까지 고분고분 고추장말을 잘 들으니 과연 고추장의 위력이 대단하다.
내 미국 친구들이 겨울만 되면 단골처럼 감기로 골골대고 있을 때 나는 감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내고 있다.
그들이 날보고 너는 어떻게 감기 한 번 안걸리냐고 묻는다. 그때마다 "내가
건강한 것은 김치 파워야.
너희들도 김치를 먹어라." 하고
자랑을 했는데 이제는 고추장의 효능이 또 하나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어린 아기를 달랠 때 호랑이 나온다 하면 뚝 그치고, 순사 온다 하면 뚝 그치듯이 뱃속이 앙탈을 부리면 고추장 먹는다
하면 조용해 질 것 같다.
고추는 남미와 아프리카가 원산지란다. 고추의 매운 맛은 알카로이드의 일종인 캡사이신 때문이란다. 이 캡사이신이
자극을 주어 발효작용을 해서 감기 열을 내리기도 하고 위도 자극해서 위액 분비를 촉진해 소화도 잘되게 하고 혈액 순환도 잘되게 한단다.
약용식물 사전에도 고추는 건위약으로 소화불량, 장풍, 진통, 동상, 류머티즘,
신경통, 기관지염에 좋고, 다산 방에는
담결리는데, 이질에 쓴다고 쓰여있다.
고추장, 된장, 김치, 젖갈류는 서양 사람들이 맛보지 못하는 한국인만이 맛을
알고 즐기는 삭은 맛이 있다. 삭은 맛,
감칠맛은 한국인만이 아는 아주 독특한 맛이다.
거기에다 모두가 발효식품이기 때문에 건강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발효를 거쳤으므로 모든 요소가 다 아미노산으로 변하여 독특한 맛을 내는 거다. 이 아미노산의 맛이 바로 삭은 맛인데 이 삭은 맛 또한 음식을 담그는 솜씨에 따라 다 다르니 서양 사람들은 백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우리의 전통 맛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삭은 음식(발효), 이것은 그냥
반찬이 아니라 약식이다.
우리가 고기국이나 햄버거는 몇끼만 먹어도 물려서 못먹지만 우리의 김치,
장류, 젓갈류는 평생을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 서양 사람들은 소스의 맛으로
먹는다는데 그것도 콜라가 없으면
먹어도 소화를 못시킨단다.
우리나라에 고추가 들어온 것은 17세기 초라는데 우리 조상님들은 그 고추를
활용해 김치, 고추장 같이 독창적이면서 과학적인 훌륭한 음식으로 발전시켰으니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가 새삼 고맙고 놀랍다.
장수촌인 히말라야 산중에 있는 샹글리 마을에는 200세가 평균 연령이고
100세는 아직 청년 취급을 받는단다.
그들이 상식하는 음식 가운데 굉장히
매운 시럽이 있다는데 장수 비결이
그 매운시럽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우리도 고추장을 매일 먹으면 200세는 거뜬히 살 것 같다는 상상을 해본다.
시골에서 닭싸움을 할 때 고추장 비빔밥을 먹여서 싸움판에 나가는 것을 보면
고추장엔 스테미너를 나게 하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아마 고추장의 주성분인
아미노산이 지칠 줄 모르는 힘을
솟아나게 하는 것 같다.
고추장 먹고 솟아나는 끈기, 고추장이 머지 않아 전 세계를 제압할 것이다...
- 김석연 재미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