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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나타나는 세계는
우리의 개인적인 자아의식과는 전혀 다른
‘나’안에 들어 있는 타자(他者), 하나의 객체정신(客體精神)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꿈의 내용을 바깥 현실이나 의식의 상황과의 관계에서 보고,
다른 하나는 꿈의 요소 자체가 갖는 의미를 중심으로 보는 것이다.
전자를 객관단계에서의 해석이라 하고, 후자를 주관단계에 아는 사람이나 현실과 관계있는 사건이 나타났을 때 그것이 그 꿈을 꾼 사람의 실제적인 현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전혀 용납하지 못하는 사이의 사람이 꿈에서는 화해를 청하는 수가 있고, 전혀 다른 좋은 성격의 측면을 나타내는 수가 있다.
현실에서는 전적으로 믿어 마지 않지만 꿈에서는 의심의 대상이 되는 수가 있다. 꿈이 현실적인 관계의 어떤 것을 수정하고 있는가, 밖의 대상에 대하여 의식에서 느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고쳐 나가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것을 깨달음으로써 현실적인 의식의 태도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주관단계에서의 해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꿈에 나오는 여러 대상이나 사건을 비록 그것이 현실과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꿈꾼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심리적 요소들, 즉 무의식적인 경향, 감정, 생각 등의 상징적 표현으로 보고 그것을 깨달아 의식에 동화시킴으로써 의식의 시야를 넓히는 해석이다.
왜냐하면 꿈은 현실의 갈등을 모사하고 반영하는 거울일 뿐 아니라, 바로 갈등의 소재를 가르쳐 주는, 갈등을 산출하는 모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꿈에 나오는 여러 상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무의식적인 콤플렉스이다.
‘꿈속의 나’ 조차도 하나의 콤플렉스이다.
생략ᆢ 꿈꾼 사람의 무의식 속에 있는 그러한 특징을 가진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다.
무의식에서는 이런 ‘그림자’가 꿈의 자아에 대하여 손을 내민다. 다시 말해서 ‘나’에 의하여 받아들여지기를 촉구하는데 ‘나’는 이를 거절하고 이런 측면을 외면하려고 한다.
또한 그러한 인식에 대하여 꿈을 꾼 사람 내부에 저항이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고 있다. 또한 그러한 인식에 대하여 꿈을 꾼 사람 내부에 저항이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고 있다. 이리하여 주관단계에서의 꿈의 해석은 지금까지 외부의 대상에 투사되어 온 여러 가지 무의식적인 요소를 자기 마음속에서 발견하고 이를 인식하게 함으로써 의식을 넓히고 보다 성숙한 단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만일에 우리가 객관단계에서의 해석만을 가한다면 밖의 대상을 향한 무의식의 투사를 충분히 되돌려서 나의 것으로 삼을 수 없게 되고 언제나 현실에 대한 투사를 통한 관계가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객관단계의 해석은 흔히 주관단계의 해석을 하기 위한 예비단계인 경우가 많다.
꿈의 해석은 하나의 체험이라는 말을 저자는 말하였다.
한 가지 흔들리지 않는 사실은 그러한 병이 신체의 병이 아닌 이상 ‘자기에 대한 무의식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관이란 하나의 자세-‘개념으로 표현된 입장’이다. 그것은 결코 신앙개조가 아니고 하나의 가설이다.
무의식은 자연이며 모든 정신 활동의 토양이며 모체이다.
무의식을 살펴가거나 무의식의 원천과 접촉하며, 그 내용에 빛깔과 소리를 내어 창조적 표현을 해 나가는 예술가나 종교가 또는 분석심리학자는 그런 의미에서 무의식의 모성성에 무한히 연결되어 있다.
원인론보다는 조건론을 생각하는 것이 적합하겠다는 것이다. ᆢ치료란 ‘말’로 사람을 고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고치는 것이다.
정신치료는 오직 하나이며, 치료 대상은 ‘환자’가 아니라 개성을 가진 ‘인간’이다.
정신치료자가 미리 아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치료의 기회는 좋다. 틀에 박힌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이라는 생각처럼 해로운 것은 없다.
일반적인 보편 타당한 삶의 처방이란 없는 것이다. 꿈도 하나의 투사상으로 엮어진다고 볼 수 있다.
꿈에 나오는 숱한 그림자의 투사 대상에는 미지의 인격상도 있고 알고 있는 인물도 있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의식에서 유도된 그 부속물이 아니라 그 자체의 조절기능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ᆢ 무의식은 상(像)을 산출한다.
그림을 그리게 할 때의 원칙 ㅡ 무엇보다도 무의식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데 있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서툰 해석은 침묵보다 해롭다.
적극적 명상(상상)
적극적 명상은 무의식을 알아 나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자 체험이다.
“전자는 직관, 다시 말해서 무의식을 인지하려는 자세에 입각하여 행해지며, 이때 리비도는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모든 요소들을 즉시 사로잡으며, 이에 해당하는 자료를 연상케 함으로써 그것에 고도의 명확성과 인식 가능성을 부여한다”고 융은 말한다.
후자는 이와 같은 직관적 태도를 미리 갖지 않은 상태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인 태도 아래 나타나는 환상을 말한다. 피동적인 환상이 병적 또는 이상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데 비해 적극적 환상은 흔히 인간의 최고의 정신 활동에 속하는 것으로 이는 의식과 무의식의 성격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적극적 명상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무의식의 비합리성에 자아의식이 휘말리지 않은 채 그 추이를 관조하고 반응하며, 그러면서 또한 그 과정을 훼방하지 말아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하려면 자아기능이 어느 정도 성숙되어 있어야 하고 자아가 약한 경우에는 무의식에 휘말리기 쉬우므로 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 명상은 인위적으로 무의식을 외재화함으로써 정신 현상을 관조하고 무의식을 대면하는 ‘나’와, 내적인 충동에 의하여 스스로 발전해 가는 또 하나의 정신적 내용으로 분리시키는 것이므로 이런 작업에 참여하는 자아의 성실한 태도가 무엇보다도 요청된다. 적극적 명상은 무의식과의 대화이다. 무의식에 대한 자아의 적절한 관심만이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는 초월적 기능을 촉진시키게 된다.
적극적 명상을 단순한 방법이나 기술로 생각하여 기계적으로 이를 구사하지 말고 무의식에 대한 경외와 그 창조성에의 기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겸허하게 찾아가고자 하는 자기성찰에의 윤리적 의무, 그 종교적 태도를 먼저 갗추는 것이 모든 방법과 기술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무의식은 상을 산출한다.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의 개인적인 자아의식과는 전혀 다른
‘나’안에 들어 있는 타자(他者), 하나의 객체정신(客體精神)이기 때문이다.
하나는 꿈의 내용을 바깥 현실이나 의식의 상황과의 관계에서 보고,
다른 하나는 꿈의 요소 자체가 갖는 의미를 중심으로 보는 것이다.
전자를 객관단계에서의 해석이라 하고, 후자를 주관단계에 아는 사람이나 현실과 관계있는 사건이 나타났을 때 그것이 그 꿈을 꾼 사람의 실제적인 현실과 어떤 관계가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전혀 용납하지 못하는 사이의 사람이 꿈에서는 화해를 청하는 수가 있고, 전혀 다른 좋은 성격의 측면을 나타내는 수가 있다.
현실에서는 전적으로 믿어 마지 않지만 꿈에서는 의심의 대상이 되는 수가 있다. 꿈이 현실적인 관계의 어떤 것을 수정하고 있는가, 밖의 대상에 대하여 의식에서 느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고쳐 나가고 있는가를 살펴보고 그것을 깨달음으로써 현실적인 의식의 태도를 바꾸어 나가는 것이다.
주관단계에서의 해석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꿈에 나오는 여러 대상이나 사건을 비록 그것이 현실과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꿈꾼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심리적 요소들, 즉 무의식적인 경향, 감정, 생각 등의 상징적 표현으로 보고 그것을 깨달아 의식에 동화시킴으로써 의식의 시야를 넓히는 해석이다.
왜냐하면 꿈은 현실의 갈등을 모사하고 반영하는 거울일 뿐 아니라, 바로 갈등의 소재를 가르쳐 주는, 갈등을 산출하는 모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꿈에 나오는 여러 상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무의식적인 콤플렉스이다.
‘꿈속의 나’ 조차도 하나의 콤플렉스이다.
생략ᆢ 꿈꾼 사람의 무의식 속에 있는 그러한 특징을 가진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다.
무의식에서는 이런 ‘그림자’가 꿈의 자아에 대하여 손을 내민다. 다시 말해서 ‘나’에 의하여 받아들여지기를 촉구하는데 ‘나’는 이를 거절하고 이런 측면을 외면하려고 한다.
또한 그러한 인식에 대하여 꿈을 꾼 사람 내부에 저항이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고 있다. 또한 그러한 인식에 대하여 꿈을 꾼 사람 내부에 저항이 있다는 것도 가르쳐 주고 있다. 이리하여 주관단계에서의 꿈의 해석은 지금까지 외부의 대상에 투사되어 온 여러 가지 무의식적인 요소를 자기 마음속에서 발견하고 이를 인식하게 함으로써 의식을 넓히고 보다 성숙한 단계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한다.
만일에 우리가 객관단계에서의 해석만을 가한다면 밖의 대상을 향한 무의식의 투사를 충분히 되돌려서 나의 것으로 삼을 수 없게 되고 언제나 현실에 대한 투사를 통한 관계가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객관단계의 해석은 흔히 주관단계의 해석을 하기 위한 예비단계인 경우가 많다.
꿈의 해석은 하나의 체험이라는 말을 저자는 말하였다.
한 가지 흔들리지 않는 사실은 그러한 병이 신체의 병이 아닌 이상 ‘자기에 대한 무의식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관이란 하나의 자세-‘개념으로 표현된 입장’이다. 그것은 결코 신앙개조가 아니고 하나의 가설이다.
무의식은 자연이며 모든 정신 활동의 토양이며 모체이다.
무의식을 살펴가거나 무의식의 원천과 접촉하며, 그 내용에 빛깔과 소리를 내어 창조적 표현을 해 나가는 예술가나 종교가 또는 분석심리학자는 그런 의미에서 무의식의 모성성에 무한히 연결되어 있다.
원인론보다는 조건론을 생각하는 것이 적합하겠다는 것이다. ᆢ치료란 ‘말’로 사람을 고치는 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고치는 것이다.
정신치료는 오직 하나이며, 치료 대상은 ‘환자’가 아니라 개성을 가진 ‘인간’이다.
정신치료자가 미리 아는 것이 적으면 적을수록 치료의 기회는 좋다. 틀에 박힌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이라는 생각처럼 해로운 것은 없다.
일반적인 보편 타당한 삶의 처방이란 없는 것이다. 꿈도 하나의 투사상으로 엮어진다고 볼 수 있다.
꿈에 나오는 숱한 그림자의 투사 대상에는 미지의 인격상도 있고 알고 있는 인물도 있다.
왜냐하면 무의식은 의식에서 유도된 그 부속물이 아니라 그 자체의 조절기능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ᆢ 무의식은 상(像)을 산출한다.
그림을 그리게 할 때의 원칙 ㅡ 무엇보다도 무의식을 가능한 한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데 있다. 그림을 잘 그리고 못 그리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서툰 해석은 침묵보다 해롭다.
적극적 명상(상상)
적극적 명상은 무의식을 알아 나가는 또 하나의 방법이자 체험이다.
“전자는 직관, 다시 말해서 무의식을 인지하려는 자세에 입각하여 행해지며, 이때 리비도는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모든 요소들을 즉시 사로잡으며, 이에 해당하는 자료를 연상케 함으로써 그것에 고도의 명확성과 인식 가능성을 부여한다”고 융은 말한다.
후자는 이와 같은 직관적 태도를 미리 갖지 않은 상태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인 태도 아래 나타나는 환상을 말한다. 피동적인 환상이 병적 또는 이상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데 비해 적극적 환상은 흔히 인간의 최고의 정신 활동에 속하는 것으로 이는 의식과 무의식의 성격들이 하나로 합쳐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적극적 명상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무의식의 비합리성에 자아의식이 휘말리지 않은 채 그 추이를 관조하고 반응하며, 그러면서 또한 그 과정을 훼방하지 말아야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하려면 자아기능이 어느 정도 성숙되어 있어야 하고 자아가 약한 경우에는 무의식에 휘말리기 쉬우므로 해서는 안 된다.
적극적 명상은 인위적으로 무의식을 외재화함으로써 정신 현상을 관조하고 무의식을 대면하는 ‘나’와, 내적인 충동에 의하여 스스로 발전해 가는 또 하나의 정신적 내용으로 분리시키는 것이므로 이런 작업에 참여하는 자아의 성실한 태도가 무엇보다도 요청된다. 적극적 명상은 무의식과의 대화이다. 무의식에 대한 자아의 적절한 관심만이 의식과 무의식을 통합하는 초월적 기능을 촉진시키게 된다.
적극적 명상을 단순한 방법이나 기술로 생각하여 기계적으로 이를 구사하지 말고 무의식에 대한 경외와 그 창조성에의 기대,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겸허하게 찾아가고자 하는 자기성찰에의 윤리적 의무, 그 종교적 태도를 먼저 갗추는 것이 모든 방법과 기술에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무의식은 상을 산출한다. 그것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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