水昇火降支村/Enzyme

개두릅

수승화강지촌 2022. 2. 1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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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두릅


어이없다는 뜻으로 쓰이는 ‘어처구니’에는 두 가지 어원이 전해온다.

하나는 맷돌의 손잡이를 어처구니라고 하는데 맷돌에 손잡이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궁궐 추녀마루 끝자락의 흙으로 빚은 수호조각들을 어처구니라고 하는데 서민들의 기와지붕 올리기에만 익숙했던 기와장이들이 당연히 올려야 할 이것들을 깜빡 잊고 올리지 않은 데서 유래한다.



그런데 후자의 어처구니에는 개두릅나무(=엄나무)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온다. 유몽인의 <어우야담(於于野談)>에 의하면 아주 오랜 옛날 옥황상제가 장난꾸러기 귀신들이었던 어처구니들에게 날수에 따라 사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손이라는 귀신을 잡아 오라 명령한다.

어처구니들이 합심하여 손을 잡은 뒤 손행자(손오공; 옥황상제를 닮은 허수아비로 선녀들을 놀린 어처구니)가 엄나무 껍질을 벗겨 만든 999자 길이의 포승 밧줄로 하늘나라로 압송하던 중 그만 밧줄이 끊어져 손이 도망가 버리게 된다.

이유인즉 엄나무 껍질이 조금 모자라 생김이 비슷한 두릅나무 껍질로 마무리한 게 화근이었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그 후 어처구니들을 잡아다 궁궐 추녀 끝에서 손으로부터 사람들을 지키도록 하였다는 재미난 이야기다. 지금도 민속신앙을 좇아 ‘손 없는 날’을 골라 예식이나 이삿날을 정하는 풍습이 남아있다.



엄나무는 한국 일본 만주 중국 등에 자생하는 낙엽 활엽 큰키나무로 음나무, 개두릅나무, 자아추목, 자추피, 정피, 정동피, 자통나무, 며느리채찍나무 등으로도 불리며 껍질은 해동피(海桐皮)라 하여 약제로 쓰인다. 높이 25m까지 자라고 잎은 단풍나무 잎처럼 5~9개로 어긋나고 둥글게 갈라지며 굵은 가지에는 바늘 모양의 가시들이 빽빽하게 나 있다. 열매는 둥근 모양의 핵과로 10월에 검게 익는다. 농촌에서는 엄나무의 가시가 잡귀의 침입을 막는다 하여 나뭇가지를 대문이나 방문 위에 꽂아 둔다. 간혹 엄나무를 정자나무나 신목(神木)으로 받들기도 했는데 마을 어귀에 엄나무를 심으면 각종 전염병이 비켜 간다고 믿었다. 엄나무는 기름지고 물기 많은 땅에서 잘 자라서 물기와 습기에 강한 면모를 보이므로 비올 때 신는 나막신 목재로도 쓰였다.



엄나무의 가시는 양기의 상징이다. 외부의 적들로부터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한 무기인 것이다. 동양 전통의학에서 가시가 있는 모든 식물은 음기, 즉 바람과 습기로 인해 생기는 병을 물리친다. 관절염이나 신경통 등 갖가지 염증, 악성 세포에 의한 암, 귀신들리거나 피부에 생기는 나병 등에 이르기까지 찔레나무나 아까시나무, 주엽나무, 탱자나무 등 가시 달린 식물이 어김없이 동원된다.



약명이 해동목인 엄나무도 차고 습한 기운이 스며들어 생기는 신경통이나 관절염, 요통, 근육통, 타박상, 늑막염, 만성 위염, 구내염증, 만성 대장염, 만성간염 등과 각종 종기, 종창, 옴, 피부병 외에 어깨와 목이 뻣뻣할 때에도 효능을 나타낸다.


민간요법에서 자주 쓰이는 처방을 소개하면,

1. 만성위염에는 엄나무 껍질을 가루 내어 6-8g씩 식전에 먹인다.

2. 만성간염이나 간경화 초기에는 속껍질을 잘게 썰어 말린 것 1.5kg에 물 5되(=1.8L)를 부은 후 물이 1/3 정도 줄 때까지 달여서 1번에 20ml씩 하루 3번 식후 또는 식사 중에 복용시킨다. 이렇게 4~5개월간 복용하면 80% 정도의 치료 효과를 보이고 잎을 달여 차로 상복하면 효과가 더 빨라진다.

3. 신경통, 관절염, 근육통, 근육 마비, 신허요통 등에는 뿌리껍질을 잘게 토막 내어 믹서로 갈아서 생즙을 내어 하루 1잔 맥주잔으로 마시면 탁월한 효과가 있다.

4. 만성 신경통, 관절염이나 옴, 종기 등 피부병, 늑막염에는 죽력(竹瀝; 대나무기름)을 짜내는 전통방식과 동일한 방법으로 짜낸 엄나무 기름을 사용하면 신기할 정도로 효험이 있다.

5. 늑막염이나 기침 가래 끓는 데에는 뿌리 생즙이 효과가 뛰어나며 나무 속껍질과 뿌리로 술을 담가 먹기도 한다.

6. 관절염이나 요통에는 엄나무를 닭과 함께 삶아 먹인다.

7. 신경통에는 속껍질 6~12g을 잘게 썰어 물 200ml를 넣고 그 절반이 되도록 달여 하루 2번 마시고 찌꺼기는 아픈 부위에 붙이기도 한다.



개두릅은 봄철에만 맛볼 수 있는 엄나무순이다. 봄나물의 으뜸으로 치는 두릅에는 두릅나무 순인 참두릅과 땅속에서 자라나는 순인 땅두릅(獨活), 그리고 엄나무 순인 개두릅이 있다. 한방에서는 두릅을 목두채(木頭菜)라 하여 아침 기상이 힘든 사람이나 공부하는 수험생에게 특별히 좋다고 알려져 있다.

두릅에 함유된 다량의 사포닌 성분이 혈당과 혈중지질을 낮추어 당뇨병을 예방하고 대뇌작용을 활발하게 하여 머리를 맑게 하고 정신적 피로를 덜어주기 때문이다.

사포닌은 뿌리에 3.3%, 줄기 껍질에 2.4%, 잎에 1.9%가 함유되어 있다. 봄에 돋아나는 여린 순은 싹이 짧고 뭉툭한 것을 골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먹는 게 일반적인데, 반드시 생채로 먹지 말고 물에 삶거나 데쳐서 쓴맛과 독성을 제거하여야 한다.

이처럼 봄철 입맛을 돋우는 쌉쌀한 맛은 개두릅이 참두릅에 비해 좀 더 강하다. 쓴맛의 사포닌이 인삼, 산삼에 견줄 정도여서 항암, 항염, 항산화 효과가 있고 비타민 A도 콩나물의 6배, 고구마의 2배나 들어 있어 각종 질환에 좋은 효과를 나타낸다.



강릉 개두릅이 지리적표시 임산물 제41호로 등록되었다. 이른 봄에 나는 개두릅에는 사포닌 등 생리활성물질이 많아서 겨우내 잃었던 영양분을 보충하고 봄날의 나른함을 이겨내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이곳만의 특산 산나물이다. 처음엔 향이 너무 강해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은근한 중독성이 있어 자주 먹다 보면 그 맛에 반하기 일쑤이다. 개두릅 새순을 채취하는 매년 4월 말이면 이곳 해살이마을에서 <개두릅축제>가 열린다.

개두릅 새순을 직접 따 그것으로 만든 개두릅 나물밥을 먹어보는 것이 축제의 하이라이트. 이 외에도 개두릅전, 엄나무백숙, 개두릅김밥 등 다양한 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이 가장 즐겨 먹는 개두릅장아찌는 소금으로 삭힌 뒤에 갖은 양념에 버무려 먹는 장아찌이다. 봄철에 연한 새순을 채취하여 항아리에 개두릅을 차곡차곡 담은 후 소금으로 절여서 3개월 정도 돌로 꾹 눌러 놓는다.

먹기 하루 전에 꺼내어 물에 담가 짠맛을 없앤 후 물기를 제거하고 고추장, 다진 파, 다진 마늘, 설탕, 깨소금 등으로 만든 양념장에 무쳐 먹는다.

몸에 좋은 약이 쓰듯 개두릅도 쓰다. 사람들이 쓴맛을 즐기는 것은 그 맛에 인생의 고단함이 배어 있어서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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